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44

덩케르크 리뷰 (뺄셈의 미학, 익명성, 비선형 구조)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뭐야 이거' 하고 끝냈습니다. 딴생각을 하면서 본 탓도 있었지만, 전쟁 영화치고 전투가 너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인지 알게 된 뒤에는, 멍하니 다시 첫 장면부터 떠올리게 됐습니다.뺄셈의 미학, 없애서 만든 영화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적군과 아군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극적 긴장감을 쌓아 올립니다. 덩케르크는 정반대의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독일군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파일럿을 체포하러 오는 병사들이 희미하게 나오는 게 전부입니다. 전투 장면도 공중전 몇 개를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고, 주인공들의 전사(前史), 즉 고향에 누가 있는지, 약혼녀가 있는지, 병든 부모가 있는지조차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2026. 6. 1.
데어 윌 비 블러드 (캐릭터 스터디, 미국 자본주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PTA 영화를 처음 접한 게 '마스터'였는데, 그 영화가 얼마나 난해하던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한참 애껴뒀습니다. 막상 보니까 '마스터'보다 훨씬 친절한 구조였고, 두 시간 반이 어느 순간 지나 있었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화면을 지배하는 방식, 폴 다노의 광기 어린 신경전, 그리고 영화 밑에 깔린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까지. 이 영화가 왜 21세기 최고작 목록 상단에 올라오는지,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가 됐습니다.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간을 해부하는 캐릭터 스터디캐릭터 스터디(character study)란 한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탐구하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 방식으로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 2026. 5. 31.
돈 룩 업 (코로나 풍자, 미디어 비판, 테크기업) 지구 멸망까지 6개월 14일. 그 긴박한 숫자 앞에서 정작 대통령은 선거 계산을 먼저 합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건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영화구나. 그냥 막연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지난 몇 년간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그 찝찝하고 무력한 감정이 화면 속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거든요.코로나와 소행성, 결국 같은 이야기영화 돈 룩 업은 표면적으로는 소행성 충돌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소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외면을 부추기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낙타 고기 금지'로 퉁치던 장면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세월호 때 "가만히 있으라"를 반복 방송하다 정작 지들.. 2026. 5. 31.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데스 엔젤, 사미라 결말, 3편 전망)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프리퀄(prequel), 즉 본편보다 이전 시간대를 다루는 번외편 '첫째 날'이 개봉했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솔직히 첫 1시간은 남주 캐릭터 때문에 몰입이 깨질 뻔했습니다. 괴물보다 남주가 더 발암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래도 영화 전체를 다 보고 나면 꽤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작품이라는 건 인정합니다.데스 엔젤의 정체와 세계관 설계이 영화의 핵심 공포 장치는 데스 엔젤(Death Angel)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입니다. 감독 존 크래신스키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설정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빛이 없는 먼 행성에서 진화한 종족입니다. 시각 기관 자체가 없는 대신, 고도로 발달한 청각 기관을 통해 사냥을 해왔습니다. 여기서 청각 기관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말은 단순히.. 2026. 5. 30.
추락의 해부 (열린결말, 서사완성, 시청각충돌) 열린 결말 영화라면 감독이 답을 숨겨둔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추락의 해부〉를 보고 나서 그 전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 영화는 답을 숨긴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답을 만들 재료를 관객에게 넘겨버립니다. 솔직히 피곤한 상태로 억지로 들어간 극장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황금종려상이 왜 이 영화에 갔는지, 배경부터 짚어야 합니다〈추락의 해부〉는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2023년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받은 작품입니다. 황금종려상이란 칸 영화제 최고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단이 선정하는 최고상으로, 세계 영화 시상식 중 권위와 역사 면에서 최상위에 속합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저는 보기 전에 "생각보다 평범하.. 2026. 5. 29.
프랙처드 (배경, 반전 구조, 트라우마 서사) 스릴러 영화의 결말에서 "결국 주인공의 망상이었다"는 카드를 꺼내는 순간, 관객은 두 가지 감정 중 하나를 느낍니다. 납득하거나, 허탈하거나. 저는 솔직히 후자 쪽이었습니다. 영화 베일에 싸인 병원은 그 경계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작품입니다.평범한 가족 여행이 무너지는 순간 — 배경가족 간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도입부는 꽤 현실감이 있습니다. 주인공 레이는 아내 조앤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병원으로 향하던 중 휴게소에 잠시 들르게 됩니다. 아내와 딸이 화장실에 간 사이 혼자 차에 있던 레이가 공사 현장 근처에서 사고를 당하고, 그 직후 아내와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여기서 중요한 서사 장치가 등장합니다. 바로 트라우마(trauma)입니다. 트라우마란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이 현재의 인지.. 2026. 5. 28.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