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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혼자 손수건을 꺼내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한 장으로 세 번. 마지막엔 미처 손도 못 대고 그냥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다행히 직장 후배들보다 바깥 좌석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체면치레는 했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픽사가 이번엔 죽음을 다룬다고 했을 때만 해도 '또 울리려고 작정했구나' 정도였는데, 코코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픽사가 처음으로 정면 돌파한 뮤지컬의 세계
코코는 픽사의 첫 번째 본격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입니다. 여기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란 단순히 OST가 좋은 작품이 아니라, 노래 자체가 극의 서사를 이끌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대사 대신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을 말합니다. 그동안 픽사 작품에 삽입곡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음악이 곧 줄거리인 방식은 코코가 처음입니다. 단편으로는 라바(Lava)가 있었지만, 장편으로는 이번이 첫 도전이었죠.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음악이 흐를 때마다 화면과 소리가 그냥 하나로 붙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설명이 아니라 진짜 체감이었어요. 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유행가, 자장가, 응원가, 찬송가까지, 노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써온 가장 오래된 언어입니다. 픽사는 그 힘을 이번 작품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활용했고, 결과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디즈니와 함께한 지 10년이 넘은 픽사가 뮤지컬 장르로 넘어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겁니다. 뮤지컬 장르는 종종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코코를 보고 나서는 그런 편견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 영화에서 노래는 장식이 아니라 구조 자체이니까요.
물론 본편 앞에 20분이 넘는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가 붙어 있다는 건 따로 언급해야 할 문제입니다. 올라프가 막대 사탕을 코에 꽂고 Sugar Rush!를 외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꽤 반가웠지만, 픽사 고유의 단편들과 비교하면 가볍고 가슴에 남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본편 코코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전주곡치고는 좀 뜬금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픽사는 코코 제작 과정에서 멕시코 현지 문화 전문가들의 자문을 광범위하게 받았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본 분이라면 그 인프라의 규모에 놀라셨을 겁니다. 멕시코 문화권의 이야기를 백인 제작진이 썼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제3자의 시선이 그 문화의 개성을 더 뚜렷하고 신선하게 포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레트로 디자인과 시티팝 사운드를 재해석하는 베이퍼웨이브(Vaporwave) — 이전 세대나 전혀 다른 문화권의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예술 운동 — 처럼, 창작에서 문화적 계승의 정통성만을 따지는 시각은 상상과 재창조의 자유를 막는 편협함일 수 있습니다. 픽사의 리서치 깊이를 감안하면 그 비판은 꽤 억울한 면도 있어 보입니다. (출처: Pixar Animation Studios 공식 페이지)
- 코코는 픽사 최초의 본격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노래가 서사와 감정을 직접 이끈다
- 멕시코의 전통 명절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을 배경으로, 현지 문화 전문가 자문을 거쳐 제작됐다
- 본편 앞에 붙은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는 20분 이상 분량으로, 코코와의 온도 차이가 상당하다
- 베이퍼웨이브 등 문화 재창조의 흐름처럼, 타 문화권에 대한 외부 시각은 오히려 신선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기억이 곧 사랑이라는 것, 코코가 말하는 죽음의 방식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신 분이 정말로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코코는 그 질문에 꽤 단호하게 답합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죽은 자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영화 속 사후 세계의 핵심 설정은 최종 죽음(Final Death)이라는 개념입니다. 이승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때 죽은 자는 저승에서도 흩어져 사라집니다. 헥터의 친구 치차론이 노래 한 곡을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그 자리에서 소멸하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거운 순간이었습니다. 대사 하나 없이 그냥 공기처럼 사라지는 그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사후 세계의 미술 연출이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축제의 공간, 형형색색의 빛과 해골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그 세계는 오히려 이승보다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픽사의 컴퓨터 그래픽(CG) — 컴퓨터를 이용해 2D 또는 3D 형태로 구현하는 디지털 시각 예술 기술 — 은 이 장면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골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따뜻함이 읽혔으니까요.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건 같은 시기에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과의 대비였습니다. 두 작품 모두 사후 세계를 다루지만 방향이 전혀 다릅니다. 신과 함께가 사후 세계를 두렵고 엄정한 심판의 공간으로 그렸다면, 코코의 사후 세계는 소멸 전까지 망자들이 누리는 놀이터에 가깝습니다. 그러면서도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에 죽은 자가 이승으로 잠시 돌아온다는 설정은 우리나라의 제사 전통과도 묘하게 맞닿아 있어서 낯설지 않았습니다. (출처: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 망자의 날 세계문화유산 등재 정보)
그리고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미구엘의 꿈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구엘이 존경한 델라 크루즈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미구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미구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델라 크루즈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 소년은 그냥 원래부터 음악이 좋았던 겁니다. 우상이 흔들려도 꿈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게 진짜 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요.
코코에 대한 점수를 굳이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클라이맥스 직전 중반부 전개가 살짝 늘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았고, 엔딩의 힘이 조금 더 단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취향의 문제이지 작품의 결함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픽사가 아닌 신생 스튜디오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면 저는 아마 9점 이상을 줬을 겁니다. 그 정도의 작품입니다.
픽사는 명실공히 대중 애니메이션의 정점입니다. 이 표현이 과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코코를 보고 나서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죽음을 축제로, 기억을 사랑으로 치환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에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경험 자체가 이미 좋은데, 코코는 거기에 뭔가 따뜻한 것을 하나 더 얹어줍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이라도 보시길 권합니다. 손수건은 미리 챙기시고요. 저는 한 번 더 볼 생각인데, 점수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Lr1epGMZAM&list=PLzMlWTOO8JND1pjgph7yiCPtgUdJ9EOOi&index=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