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야지 봐야지 하며 계속 타이밍을 놓치다가 얼마 전에 겨우 봤습니다. 솔직히 '60년대 인종차별 + 흑백 콤비 우정' 이 조합이면 결말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 꽤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예상은 맞았는데, 그래도 좋았습니다.비고 모르텐슨이라고 몰라볼 뻔했습니다일반적으로 비고 모르텐슨 하면 아라곤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는 그 기억이 거의 지워졌습니다. 살까지 찌워서 나오니 포스터를 안 봤다면 다른 배우인 줄 알았을 것 같습니다.캐릭터 자체도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말빨만 좋고 주먹부터 내세우는 허풍쟁이처럼 보이는데, 보다 보면 가족한테는 정성을 다하고 상황 판단도 빠르고 나름 의리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먼치킨형 캐릭터인가 했..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까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작들을 워낙 높게 쳐두고 있던 터라, 최근 작품들은 조금 평이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트나인 스크린 앞에 앉아서 영화가 끝났을 때, 제가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교외 연립주택단지, 그리고 태풍이 만들어낸 정서혹시 어린 시절에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을 기억하십니까? 전날까지 요란하게 창문을 두드리던 바람과 빗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세상 전체가 쓸려나간 듯 조용해지던 그 적막감 말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감각을 스크린 위에 옮겨놓으려 한 작품입니다.고레에다 감독은 아홉 살부터 20년간 살았던 실제 연립주택단지를 직접 찾아가 촬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뭐야 이거' 하고 끝냈습니다. 딴생각을 하면서 본 탓도 있었지만, 전쟁 영화치고 전투가 너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인지 알게 된 뒤에는, 멍하니 다시 첫 장면부터 떠올리게 됐습니다.뺄셈의 미학, 없애서 만든 영화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적군과 아군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극적 긴장감을 쌓아 올립니다. 덩케르크는 정반대의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독일군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파일럿을 체포하러 오는 병사들이 희미하게 나오는 게 전부입니다. 전투 장면도 공중전 몇 개를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고, 주인공들의 전사(前史), 즉 고향에 누가 있는지, 약혼녀가 있는지, 병든 부모가 있는지조차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PTA 영화를 처음 접한 게 '마스터'였는데, 그 영화가 얼마나 난해하던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한참 애껴뒀습니다. 막상 보니까 '마스터'보다 훨씬 친절한 구조였고, 두 시간 반이 어느 순간 지나 있었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화면을 지배하는 방식, 폴 다노의 광기 어린 신경전, 그리고 영화 밑에 깔린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까지. 이 영화가 왜 21세기 최고작 목록 상단에 올라오는지,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가 됐습니다.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간을 해부하는 캐릭터 스터디캐릭터 스터디(character study)란 한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탐구하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 방식으로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
지구 멸망까지 6개월 14일. 그 긴박한 숫자 앞에서 정작 대통령은 선거 계산을 먼저 합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건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영화구나. 그냥 막연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지난 몇 년간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그 찝찝하고 무력한 감정이 화면 속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거든요.코로나와 소행성, 결국 같은 이야기영화 돈 룩 업은 표면적으로는 소행성 충돌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소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외면을 부추기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낙타 고기 금지'로 퉁치던 장면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세월호 때 "가만히 있으라"를 반복 방송하다 정작 지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프리퀄(prequel), 즉 본편보다 이전 시간대를 다루는 번외편 '첫째 날'이 개봉했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솔직히 첫 1시간은 남주 캐릭터 때문에 몰입이 깨질 뻔했습니다. 괴물보다 남주가 더 발암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래도 영화 전체를 다 보고 나면 꽤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작품이라는 건 인정합니다.데스 엔젤의 정체와 세계관 설계이 영화의 핵심 공포 장치는 데스 엔젤(Death Angel)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입니다. 감독 존 크래신스키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설정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빛이 없는 먼 행성에서 진화한 종족입니다. 시각 기관 자체가 없는 대신, 고도로 발달한 청각 기관을 통해 사냥을 해왔습니다. 여기서 청각 기관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말은 단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