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봐야지 봐야지 하며 계속 타이밍을 놓치다가 얼마 전에 겨우 봤습니다. 솔직히 '60년대 인종차별 + 흑백 콤비 우정' 이 조합이면 결말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 꽤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예상은 맞았는데, 그래도 좋았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이라고 몰라볼 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고 모르텐슨 하면 아라곤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는 그 기억이 거의 지워졌습니다. 살까지 찌워서 나오니 포스터를 안 봤다면 다른 배우인 줄 알았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 자체도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말빨만 좋고 주먹부터 내세우는 허풍쟁이처럼 보이는데, 보다 보면 가족한테는 정성을 다하고 상황 판단도 빠르고 나름 의리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먼치킨형 캐릭터인가 했다가, 결국 이 인물의 장점이 '노련한 사회성'이라는 게 드러나는 지점이 더 정감이 갔습니다.
여기서 잠깐 영화의 배경을 짚어두면, 토니가 받는 그린북(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행된 실제 여행 안내서입니다. 여기서 그린북이란 인종분리정책(Racial Segregation), 그러니까 흑인과 백인의 공간을 법으로 분리하던 시절 흑인 여행자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을 모아놓은 책자입니다. 제임 크로법(Jim Crow Laws)이라 불리는 이 인종분리 법제는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정 전까지 미국 남부 주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이 시대적 배경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드는 핵심입니다. 제가 직접 본 느낌으로는, 그린북이라는 소품 하나가 당시 사회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차별을 제도화했는지를 설명 없이도 느끼게 해줍니다.
편견이 부딪히는 방식이 뻔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소재의 영화라면 '무지한 백인이 깨달음을 얻는' 구조가 전형적인데, 이 영화는 그 구도를 살짝 비틉니다. 백인인 토니가 오히려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사는 반면, 흑인인 돈 셜리는 클래식 음악을 하고 격식을 중시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저는 이 반전이 단순히 재미 요소가 아니라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의 절반이라고 느꼈습니다.
흑인이라면 당연히 치킨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건네는 장면, 혹은 토니가 "나야말로 흑인들 사이에서 살아봤으니 내가 더 흑인에 가깝다"고 비꼬는 장면은 솔직히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정확하게 의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제가 작중 초반 토니와 비슷한 인식 수준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슬쩍 돌아보게 됐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주목하는 개념이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입니다. 코드 스위칭이란 특정 집단에 속하기 위해 언어나 행동 방식을 상황에 따라 바꾸는 현상을 뜻하는데, 돈 셜리는 클래식 음악 무대에서는 인정받지만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백인 사회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그려집니다. 셜리가 차창 밖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흑인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아무 대사도 없이 그 감정이 전달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무언의 장면이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돈 셜리의 상황을 현실 데이터로 보면 더 와닿습니다. 1960년대 미국 흑인의 대학 진학률은 약 4~5% 수준이었고,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 예술가가 남부 백인 관객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인문학재단).
우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방식이 서로 감화를 받아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는 식이 아닙니다. 토니는 끝까지 말이 좀 거칠고, 셜리는 끝까지 약간 까다롭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 변화를 단계별로 보면 이렇습니다.
- 처음에는 명백한 갑을 관계이자 상호 불신에서 출발합니다.
- 셜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토니가 몸으로 막아주면서 신뢰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 술자리에서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를 계기로 관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 마지막 공연을 함께 날리고 낡은 흑인 클럽에서 새벽을 보내며 진짜 친구가 됩니다.
비르투오소(Virtuoso)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특정 예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교와 표현력을 갖춘 연주자를 뜻합니다. 셜리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비르투오소인데, 그가 낡고 오래된 클럽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자 클럽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는 장면이 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격식 없는 공간에서 하는 연주가 오히려 더 자유롭게 느껴졌습니다.
마허샬라 알리가 이 캐릭터를 얼마나 섬세하게 연기했냐면, 자기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인물임에도 눈빛과 자세만으로 외로움이 전달됩니다. 이 영화는 사실 문라이트로 오스카를 받은 마허샬라 알리가 그린북으로 두 번째 조연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까지 극 중 인물에 이입하며 본 영화가 최근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종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도 성별과 세대 간 반목이 심한 시점입니다. 서로가 가진 편견을 먼저 인식하고 조금씩 내려놓는 과정을 이 영화만큼 억지 없이 보여주는 콘텐츠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저처럼 타이밍을 여러 번 놓쳤다면, 이번에는 그냥 잡으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