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멸망까지 6개월 14일. 그 긴박한 숫자 앞에서 정작 대통령은 선거 계산을 먼저 합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건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영화구나. 그냥 막연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지난 몇 년간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그 찝찝하고 무력한 감정이 화면 속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거든요.
코로나와 소행성, 결국 같은 이야기
영화 돈 룩 업은 표면적으로는 소행성 충돌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소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외면을 부추기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낙타 고기 금지'로 퉁치던 장면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세월호 때 "가만히 있으라"를 반복 방송하다 정작 지들만 빠져나왔던 그 장면도요. 그게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이 영화는 아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NASA의 행성방위조정사무소(PDCO, Planetary Defense Coordination Office)는 소행성 같은 잠재적 위협 물체의 접근 정보를 정부와 언론, 대중에게 즉각 제공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서 PDCO란 지구 근접 천체(NEO, Near-Earth Object)를 탐지하고 충돌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는 나사 산하 기관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이 조직의 역할은 철저하게 무시됩니다. 데이터가 있고, 경고가 있고, 전문가가 있어도, 그 정보가 정치적으로 불편하면 그냥 묻어버리는 구조가 현실과 너무 닮아 있다는 게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소름 돋았던 지점입니다.
한때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저서 '페일 블루 닷'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가 소행성을 막을 기술을 갖게 된다면, 그보다 인위적 충격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요. 영화는 그 경고를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았습니다.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건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정치이고, 그 정치를 작동시키는 미디어 생태계라는 겁니다.
미디어와 SNS, 진실을 삼키는 알고리즘
영화에서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대목은 미디어와 테크 기업 비판입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아침 방송 진행자가 인류 최대의 위기를 팝스타 스캔들과 같은 무게로 다루는 부분이었습니다. 영화 속 방송사 '데일리 립'은 미국 ABC의 아침 방송 '굿모닝 아메리카'를 그대로 패러디한 것인데, 저는 그 장면에서 웃다가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매일 보는 뉴스가 저렇지 않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 이란 언론이 특정 사안을 어떤 맥락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 자체를 바꾸는 효과를 말합니다. 영화는 이 프레이밍 효과가 극단적으로 작동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과장 없이, 오히려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코로나 종식을 두세 번 선언하고도 뒤에서 시체를 치우던 나라들, 축구장에 사람이 가득 찼던 영국, 감염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숫자가 줄었다고 방역 성공이라 떠들던 남미. 저는 그 뉴스들을 보면서 정말 이게 현실인가 싶었는데, 이 영화가 그 감각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테크 기업 비판도 예리합니다. 영화 속 피터 이셔웰이 이끄는 기업은 스마트폰을 팔면서 동시에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로 죽음의 원인까지 예측한다고 주장합니다. 알고리즘(Algorithm)이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계산 규칙의 집합인데,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오래 머물게 하는 콘텐츠를 우선 노출합니다. 문제는 그 '오래 머물게 하는 콘텐츠'가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영화가 테크 기업을 구세주 코스프레하는 자들로 묘사하는 건,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기 이전에 그 구조 자체를 의심하라는 이야기입니다(출처: MIT Media Lab).
이 영화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핵심 집단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학적 경고를 정치적 손익으로만 계산하는 정치권
- 위기를 시청률 소재로 소비하는 방송 미디어
- 빅데이터 마이닝으로 사용자를 착취하면서 인류의 구세주를 자처하는 테크 기업
-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콘텐츠 안에서 각자의 신념만 강화하는 대중
그래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랜들 민디 교수는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습니다. 추억을 나누고, 감사를 표현하고,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울컥했습니다. 세상이 작살나기 직전에 사람들이 선택하는 게 결국 저 평범한 순간이라는 것, 그게 사실 우리가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게 마음을 때렸거든요.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면 문제가 남습니다. 영화처럼 소행성이 실제로 온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소행성이 아니더라도 코로나든, 기후위기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이 질문 앞에서 저도 쉬운 답이 없습니다.
에코 챔버(Echo Chamber)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끊임없이 증폭되고 강화되는 현상입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이 에코 챔버를 가속화한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실제로 2021년 발표된 NYU 스턴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중립적 콘텐츠보다 더 많이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NYU Stern Center for Business and Human Rights).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갈라치기하고, 각자의 필터 버블 안에서만 세상을 보는 지금 이 상황은 영화 속 돈 룩 업 세력과 룩 업 세력이 싸우는 그 장면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나는 지금 올려다보고 있는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가."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제대로 본 겁니다. 직접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보고 나서 잠깐이라도 화면을 끄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이 영화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