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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성장 연출, 리얼리즘, 감동 포인트)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포스터에 적힌 "10년간 본 영화 중 최고"라는 문구를 반쯤 흘려봤습니다. 그런 홍보 문구는 으레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극장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별다른 사건도, 영웅도 없는 영화가 어떻게 이런 여운을 남기는지, 그 이유를 제 나름대로 분석해봤습니다.12년 실시간 촬영이라는 전례 없는 연출 방식보이후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각본을 쓰기도 전에 아이디어부터 떠올린 영화입니다. 한 아이의 성장을 12년에 걸쳐 실제로 촬영하겠다는 발상이었죠. 이 방식의 핵심은 롱거다시날(longitudinal casting), 즉 동일한 배우를 장기간 촬영하는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한 배우가 실제로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2026. 6. 8.
버드맨 리뷰 (롱테이크, 연기, 자아) 극장을 나오면서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뭔가 퉁 하고 때리는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집으로 걷는 내내 영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감상이 가라앉기 전에 서둘러 글을 씁니다.원테이크처럼 보이는 이유, 그리고 그게 버드맨일 수밖에 없는 이유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버드맨을 보기 전에 "원테이크 스타일로 찍은 영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감독의 기교를 뽐내는 실험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이 영화는 롱테이크(Long Take)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롱테이크란 컷을 자주 끊지 않고 카메라가 한 번에 길게 이어서 촬영하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버드맨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26. 6. 8.
영화 her (색채 연출, 사운드 디자인, 사랑의 본질) 작년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영화를 잘 못 봤습니다. 뭘 봐도 괜히 감정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요. 그러다 어느 날 밤, 별 기대 없이 틀었던 영화 한 편이 저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3년작, 영화 그녀였습니다.색채 연출로 읽는 테오도르의 감정선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느낀 건 "색깔이 되게 이상하게 예쁘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뭔가 따뜻한데 어딘가 쓸쓸한, 그 기묘한 온도감이 화면 전체에 깔려 있었거든요.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감독의 철저한 계산이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의 색조, 즉 채도를 낮추고 명도를 높인 부드러운 색 팔레트를 배경 전반에 적용합니다. 여기서 파스텔톤이란, 흰색이 많이 섞여 부드럽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색 계열을 말합니.. 2026. 6. 7.
밀양 (시각적 모티프, 신애 심리, 종찬 의미) 솔직히 저는 처음 밀양을 봤을 때 이게 단순히 상실과 신앙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괴범 면회 장면 한 컷에 얼이 빠졌고, 그 순간부터 이 영화가 뭔가 다르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매 장면이 논리적으로 배치된 구조물에 가깝습니다. 그 구조를 분해해보면 이 영화가 왜 21세기 한국 영화 최고작으로 꼽히는지 납득하게 됩니다.유리창이라는 시각적 모티프 — 신애 심리의 외화이창동 감독의 연출 방식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미장센(mise-en-scène)의 치밀함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조명, 소품, 배경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기법입니다. 밀양에서 그 중심에 있는 소품이 바로 '유리창'입니다.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 2026. 6. 7.
애프터썬 (프레임, 우울증, 관람 후 여진) 솔직히 말하면 보는 내내 불만이었습니다.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 절제인지 무책임인지 헷갈리는 생략들. 그런데 극장을 나와서도, 며칠이 지나서도 이 영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애프터썬은 그렇게 뒤늦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관람 중에는 몰랐던 것들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제가 든 첫 생각은 "이게 왜 아카데미 후보야?"였습니다. 이혼한 아버지와 11살 딸이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이렇다 할 사건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리조트 일상, 길게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들.중반이 지나기도 전에 인과관계 추론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왜 저런 돌발 행동을 하는지,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된 건지, 우울증을 겪는 것 같은 아버지가 나.. 2026. 6. 6.
패닉룸 (밀실 스릴러, 데이비드 핀처, 조디 포스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데이비드 핀처에 조디 포스터라는 조합이면 무조건 봐야지 싶었는데, 막상 극장에서 나올 때는 좀 복잡한 기분이 들더군요. 재미있긴 한데, 어딘가 아쉽고, 또 어딘가 너무 세다는 느낌. 이 영화 두고 평이 꽤 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밀실 스릴러 장르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공간 연출저도 처음엔 그냥 도둑이 드는 영화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패닉룸은 공간 자체를 무기로 쓰는 영화라는 걸 10분도 안 돼서 깨달았습니다. 맨해튼의 3층짜리 타운하우스, 그리고 그 안에 설치된 패닉룸. 여기서 패닉룸(Panic Room)이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요새형 대피 공간을 말합니다. 방탄 소재의 문과 독립 전원, 감시 카메라 시스템까지 갖춰 어떤 외부 침입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입.. 2026. 6. 6.
나 다니엘 블레이크 (관료주의, 복지 사각지대, 켄 로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보면서 운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목이 메었습니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복지 시스템의 구멍에 떨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붙드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관료주의의 벽 앞에 선 사람들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이게 현실이라고?" 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 경력의 목수입니다. 심장마비로 사망 직전까지 갔고, 주치의는 일을 금지했습니다. 누가 봐도 질병 수당을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를 거부합니다.이 영화의 핵심 문제는 관료주의(bureaucracy)입니다. 여기서 관료주의란 규정과 절차를 사람보다 앞세우는 행.. 2026. 6. 5.
박하사탕 다시 보기 (역순구조, 카타르시스, 선택의 무게)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20대에 처음 봤을 때 그냥 잘 만든 영화라고 넘겼는데, 십수 년이 지나 다시 보고서야 왜 이게 걸작 소리를 듣는지 이해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야만 보이는 영화가 있다는 걸, 박하사탕이 증명합니다.역순서사 구조가 주는 충격박하사탕(1999)은 역순서사(reverse chronology) 방식으로 이야기를 풉니다. 역순서사란 이야기를 결말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술 방식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나 가스파르 노에의 되돌이킬 수 없는도 같은 방식을 씁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이 구조를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주제 그 자체로 사용합니다.영화는 1999년의 영호가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2026. 6. 5.
블레이드 러너 2049 (레플리컨트, 인간다움, 미장센)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러닝타임 163분짜리 SF영화입니다. 일반적으로 속편은 전작의 명성을 갉아먹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그 공식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원작이 던진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들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습니다.레플리컨트가 묻는 것: 영혼이란 텍스트인가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간단합니다. 레플리컨트(Replicant)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생체 노동자로, 외형과 행동이 인간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사하게 설계된 존재입니다. 주인공 K는 그 레플리컨트 중에서도 다른 레플리컨트를 추적하고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란 탈출한 구형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키는 임무를 수.. 2026. 6. 4.
플로리다 프로젝트 (핸드헬드, 네오리얼리즘, 아역연기) 비전문 배우를 인스타그램에서 캐스팅해 3주 만에 현장에 투입한 영화가 있습니다. 브리아 비나이트, 1993년생. 그가 연기한 무니 엄마 핼리는 그 짧은 준비 기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날것 그대로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제가 느낀 감정은 감탄보다 당혹감에 가까웠습니다. 이게 연기인가,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인가 하는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거든요.핸드헬드 촬영과 네오리얼리즘이 만든 질감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촬영 방식부터 남다릅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전작들을 아이폰으로 찍은 감독입니다. 이번 작품 역시 마지막 엔딩 시퀀스는 아이폰으로 촬영했는데, 이게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디즈니 월드 촬영 허가가 나오지 않아 몰래 아이폰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제약이 결과적으로.. 2026. 6. 4.
킬링 디어 (불편함, 카타르시스, 희생양)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나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킬링 디어를 본 날 밤, 진짜로 그랬습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불쾌한 감정을 남기는 영화는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불쾌함이 오래 남았고, 결국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불편함이 설계된 영화라는 것킬링 디어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2017년 작품입니다. 감독 특유의 미장센(mise-en-scène) 방식이 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데,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배우, 조명, 소품, 공간 구성 등 모든 시각 요소를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개념입니다. 킬링 디어에서는 이 미장센이 유독 차갑고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는 내내 어딘가 인공적이고 낯선 느낌을 줍니다.저도 처음엔 그냥 "이상한 영화"라고만 느꼈는데, 씬 하나하나.. 2026. 6. 3.
영화 로건 리뷰 (노쇠한 영웅, 로드 무비, 휴 잭맨) 휴 잭맨이 17년간 연기한 울버린의 마지막 독립 영화, 로건은 로튼 토마토 관객 점수 93%에 전 세계 흥행 수익 6억 달러를 넘긴 작품입니다. 울버린 팬이었음에도 사정이 생겨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했고, 이번에 제대로 각 잡고 봤는데 마지막에 눈물을 질질 짰습니다. 왜 이렇게 슬픈 영화인지, 어떻게 봐야 이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지 풀어보겠습니다.노쇠한 영웅: 기존 히어로 영화와 완전히 다른 출발점히어로 영화를 고를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예전 시리즈 분위기 그대로겠지"라는 기대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로건은 시작부터 그 기대를 보기 좋게 짓밟습니다.이전 엑스맨 시리즈에서 울버린은 언제나 여유 넘치는 나쁜 남자 포스였습니다. 치유 능력, 즉 힐링 팩터(Healing Fa.. 202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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