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85 모가디슈 (프로덕션, 오월동주, 신파절제)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 이후로 다시 이 정도 규모를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거 진짜 잘 만들었다." 모로코 현지 로케이션으로 찍은 아프리카 내전 탈출극이,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도착했습니다.한국영화 시스템이 도달한 수준 — 프로덕션제가 직접 스크린으로 보면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연기도, 스토리도 아니었습니다. 300명 넘는 현지 보조 출연자들이 뛰어다니는 야외 시퀀스, 그 혼돈이 스크린 위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졌습니다. 이런 장면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여기서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프리프로덕션이란 본 촬영 전 기획, 로케이션 섭외, 스태프 구성, 리허설 .. 2026. 6. 25. 한산: 용의 출현 (배우, 학익진, 명랑) 솔직히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는 괜히 보기 싫은데 입소문 한 번 믿어보자 싶어서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원래 전쟁영화는 엄청 선호하지도 않고, 명량도 그냥 통으로 건너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산은 달랐습니다. 보고 나서 "이거 괜찮은데?"가 아니라 "이거 잘 만들었다"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전편을 안 봐도 되는 이유, 배우들 이야기한산이 명량의 프리퀄(prequel)이라는 점이 사실 처음엔 걸렸습니다. 프리퀄이란 기존 작품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사건을 다루는 후속작을 뜻하는데, 보통 전편을 봐야 맥락이 닿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한산은 명량을 안 본 저도 전혀 불편함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편 없이 이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완결된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 2026. 6. 25. 오펜하이머 (3시간, 구조, 킬리언 머피, 43명) 3시간짜리 영화를 보러 가면서 중간에 졸지 않을 자신이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솔직히 저도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체감 상영 시간이 두 시간도 안 됐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뭔가 다른 영화였습니다.3시간이 짧게 느껴진 이유영화는 크게 세 페이즈로 나뉩니다. 핵 개발 이전, 맨해튼 프로젝트 진행, 그리고 핵 투하 이후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주도한 원자폭탄 개발 계획으로,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총책임자를 맡았던 실제 역사적 사건입니다.제가 특히 압도됐던 건 초반 핵 개발 이전 파트였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이론 물리학자로서 양자역학의 세계에 빠져들던 시절을 원자의 움직임, 별의 붕괴 같은 이미지로 시각화해.. 2026. 6. 25. 퍼스트 카우 (서부극, 두 사람, 화면비, 우정) 서부극인 줄 알고 틀어놨다가 어느 순간 쿠키 굽는 장면에 홀딱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 영화 보면서 딱 그랬습니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는 총도, 결투도, 말달리기도 없는 서부극입니다. 그런데 보고 나면 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쿠키와 우유, 이게 서부극 맞나요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아무 정보도 없이 앉았습니다. 포스터에 소 한 마리와 두 남자가 있어서 막연히 개척 시대 버디 무비겠거니 했는데, 첫 장면부터 뭔가 달랐습니다.영화는 1820년대가 아니라 현재에서 시작합니다. 이른바 프롤로그(prologue) 시퀀스라고 부르는 구성인데, 여기서 프롤로그란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배치되는 도입부 장면을 말합니다. 한 여성이 개와 함께 컬럼비아 강변을 산책하다 .. 2026. 6. 24. 드라이브 마이 카 (원작, 치유, 호불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을 바탕으로 2021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3시간짜리 영화라는 말에 솔직히 조금 겁먹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중간에 나오고 싶은 순간은 없었습니다. 다만 좋다고 자신 있게 추천하기도, 별로라고 잘라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 영화였습니다.원작과 영화 사이, 얼마나 달라졌나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 단편입니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같은 단편집 안에 있는 세헤라자드, 그리고 목록에 없던 또 다른 이야기의 모티프까지 끌어와 한 편의 장편으로 재조립했습니다. 여기에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영화 안에 또 하나의 레이어로 삽입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른바 극중극(劇中劇) 기.. 2026. 6. 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의 평범성, 사운드, 현재성)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란 으레 수용소 안의 참상을 정면으로 들이밀거나 눈물을 강요하는 방식일 거라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달랐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악의 평범성 — 루돌프 회스 가족의 일상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개념이 바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었습니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란 거대한 악이 괴물 같은 개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무사유(thoughtlessness), 즉 생각하기를 멈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개념입니다. 아렌트가 1963년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며 정식화한 이 개념은.. 2026. 6. 23. 아이리시맨 (몰입감, 허망함, 영혼의 전락) 3시간 30분짜리 영화를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끝까지 봤습니다. 오줌도 참으면서요. 저한테 그게 명작의 기준입니다. 아이리시맨은 그 기준을 가볍게 통과했습니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진짜 인생 진짜 허망하네."3시간 반을 버티게 만드는 몰입감의 정체솔직히 처음엔 걱정했습니다. 3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어지간한 각오 없이는 도전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까 이상하게 끊기가 싫더라고요. 명작들에는 공통적으로 이런 게 있습니다. 연출의 호흡이 뭔가 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집중력이 유지되는 느낌. 대사가 좋거나, 화면이 좋거나, 궁금증이 계속 생기거나. 아이리시맨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씁니다.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 프랭크 시런이 오랜 친구이자 보스인 지미 호파를.. 2026. 6. 23. 펄프 픽션 (맥거핀, 비선형 서사, 우연성) 솔직히 처음 펄프 픽션을 봤을 때,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뭔가 엄청난 걸 본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말로 설명이 안 됐거든요. 타란티노의 작품 중 저는 이 영화를 원픽으로 꼽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하나씩 뜯어보려 합니다.맥거핀, 관객을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끈영화 초반, 건달 빈센트와 줄스는 가방 하나를 회수하러 갑니다. 그 가방을 얻기 위해 사람까지 죽이죠. 그런데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영화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보면서 궁금하지 않으셨나요?이때 타란티노가 사용한 기법이 바로 맥거핀(MacGuffin)입니다. 여기서 맥거핀이란 이야기를 추진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정체나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 장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관객의 시선을 끌기 .. 2026. 6. 22. 캐치 미 이프 유 캔 (대리만족, 실화, 성장통)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화려한 사기극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근데 다시 보니까 전혀 달랐습니다. 외롭고 겁 많은 소년이 세상을 향해 던진 처절한 몸부림이었더라고요. 스필버그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대리만족 — 볼 때마다 피가 끓는 이유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뭐랄까 묘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홍콩 액션 영화 봤을 때 피가 끓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흥분입니다. 통쾌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느낌이랄까요.특히 칼 한래티(톰 행크스)가 프랭크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아직 프랭크가 범인인지도 모른 채 같이 범인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장면, 제가 직접 보면서도 손에 땀이 맺혔습니다. 이걸 영화에서는 내러티브 아이러니(narrative .. 2026. 6. 22. 디스트릭트 9 (감정이입, 사회비판) 외계인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더 징그럽다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처음엔 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곤한 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는 사실 부담스럽거든요. 봉준호 감독 영화도 비슷한 이유로 개인적으로 불편한 편입니다. 그런데 디스트릭트 9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감정이입: 왜 인간보다 외계인이 더 믿음직스러웠나영화 초반은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핸드헬드 촬영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핸드헬드란 카메라를 삼각대 없이 손으로 들고 찍는 방식으로, 화면이 흔들리며 다큐멘터리 같은 날 것의 현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 덕분에 처음엔 "이게 극영화인가 다큐인가" 헷갈릴 정도였고, 집사람도 옆에서 "생각보다 과격하다"며 불편해했습니다.주인공 비커스는 처음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속된.. 2026. 6. 21. 노팅힐 (만남, 줄리아 로버츠, 재개봉) 로맨틱 코미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자부하던 저 자신이, 스크린 앞에서 내내 설레고 있었습니다. 1999년작 노팅힐을 극장에서 처음 보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왜 이제야 봤지? 이 글은 재개봉 극장에서 직접 관람한 경험을 토대로 씁니다.평범한 서점 주인과 세계적 스타, 그 엉뚱한 만남사실 저는 이런 장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여태껏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냥 신데렐라 이야기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제 예상이 꽤 빗나갔습니다.영화는 영국 웨스트 런던의 작은 동네 노팅힐에서 여행 전문 서점 더 트래블 북 컴퍼니를 운영하는 윌리엄 테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매월 적자를 내는 서점, 바람난 아내가 떠난 빈자.. 2026. 6. 21. 조커 (망상, 사회비판) 솔직히 이 영화 보러 갈 때 기대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광기가 넘치는, 카드 패처럼 판을 한방에 뒤집는 그 조커 말입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건 내가 알던 조커가 아닌데"였고, 그러면서도 영화관을 나오는 발걸음이 꽤 무거웠습니다. 좋은 의미로요.망상과 현실 사이, 아서 플렉의 심리 구조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저 장면, 진짜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그냥 아서의 머릿속 이야기일까.영화는 처음부터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망상(delusion) 상태에 놓인 사람으로 설정합니다. 여기서 망상이란 현실과 괴리된 강한 믿음이 지속되는 상태로, 정신의학 용어로는 정신증(psychosis)의 주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아서는 자신이 유명 코미디언의.. 2026. 6. 21.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1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