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판타스틱4를 한 편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알아도 리드 리처드가 누군지, 수잔 스톰이 뭘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냥 이번 주 좀비따이 보러 영화관 갔다가 줄이 너무 길어서 반쯤 충동적으로 들어간 게 판타스틱4였는데, 막상 보고 나왔더니 생각보다 훨씬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기대치가 낮았던 게 오히려 득이 됐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판타스틱4 첫 관람인데도 진입장벽이 없었던 이유제가 마블 시리즈를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게 있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야 워낙 봐왔으니 따라가는데, 근래 들어 사전 지식이 없으면 영화 절반은 날아가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데드풀과 울버린 볼 때가 제 입장에서 마블 진입 장벽의 정점이었습니다. 보면서 "저 캐릭터가 ..
넷플릭스를 켜다 제목만 보고 그냥 넘길 뻔했습니다. 그런데 변성현 감독이라는 걸 확인하고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2024년 10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는 1970년 실제 일어났던 일본항공 납치 사건, 이른바 '요도 사건'을 모티브로 한 136분짜리 블랙 코미디입니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거 걸작이다.실화 기반의 설정이 이렇게 황당해도 되나블랙 코미디(Black Comedy)는 비극적이거나 불편한 현실을 웃음의 언어로 비트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란 단순히 우스운 상황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웃고 나서 씁쓸함을 느끼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서사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의 실화 소재가 이 장르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1970..
재난 영화라고 믿고 눌렀는데, 중간에 갑자기 AI 철학 영화가 되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가 딱 그렇습니다. 솔직히 저는 어느 정도 악평을 듣고 나서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럭저럭 볼 만했습니다. 하지만 그 '볼 만했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 영화가 왜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맛이 없어졌는지, 제 나름대로 뜯어봤습니다.재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게 SF라고요?재난 영화를 보러 갔다가 SF 철학 강의를 들은 기분, 혹시 공감하시나요? 는 예고편부터 김다미, 박혜수라는 이름값과 함께 전형적인 재난 스릴러 비주얼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남극에 소행성이 충돌해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에 대홍수가 발생하고, 3층짜리 아파트에 살던 엄마와 아들이 탈출을 시도한다는 초반 설정..
넷플릭스에서 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멜로 영화는 배우가 예쁘고 잘생겨야 설득이 된다고 막연히 믿어왔거든요.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 이종필 감독이 2025년 2월 20일 넷플릭스에 공개한 작품인데 — 군 입대 전후로 박민규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던 저한테는 꽤 개인적인 영화가 됐습니다.배우의 힘 — 고아성이 설득에 성공한 방식일반적으로 멜로 영화에서 "못생기고 볼품없는 여자 주인공"을 실제로 예쁜 배우가 연기하면 관객 몰입이 깨진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고아성 씨가 연기하는 미정은 분명히 주변 사람들한테 '공룡'이라는 별명으로 놀림받는 인물인데, 이상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도연에 오승욱 감독이라는 조합이면 최소한 기본값은 보장된다고 믿었거든요. 그 믿음이 틀렸습니다. 2025년 개봉작 를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서였습니다.기대감 — 믿었던 조합이 주는 함정일반적으로 특정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 검증된 전작이 있으면 후속작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 딱 그랬습니다. 오승욱 감독은 2015년작 으로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바 있고, 그 영화는 지금도 국내 느와르 장르의 수작으로 꼽힙니다. 여기서 느와르(noir)란 어둡고 비도덕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탐욕과 배신을 그리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제가 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번 작품에 대한..
아카데미 강력 후보라는 말에 솔직히 좀 긴장하면서 틀었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무언가 달랐습니다. 카메라가 두 병사를 따라 참호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순간, 이건 그냥 전쟁 영화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영화 1917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두 병사가 적진을 가로질러 아군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전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이 이 영화의 절반이다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낀 건 긴장감이었습니다. 특히 독일군 전투기가 불시착하는 장면 근처에서 몸이 저렸습니다. 진짜입니다. 극적인 액션도, 총격전도 아닌데 배경음과 공기의 밀도만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정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