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만 보고 가벼운 로맨스물이겠거니 했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영화가 있습니다. 숀 베이커 감독의 입니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굵직한 부문을 쓸어 담았을 때, 솔직히 처음엔 '2024년에 이것보다 잘 만든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서는, 아 이래서 걸작이라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5분이 그 이유를 단번에 설명해 줍니다.장르 전환: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더니영화가 시작하면 어두컴컴한 클럽 안에서 아노라가 손님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쇼트는 잘게 나뉘어 있고, 등장인물도 많고, 주인공의 움직임은 쉴 새 없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달리던 영화가 러닝타임 40분 지점에서 한 번 완전히 멈추는 것처럼 느껴..
20살 감독이 만든 영화가 A24 역사상 최연소 감독 타이틀을 가져갔습니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16세에 유튜브 시리즈로 수억 뷰를 찍더니, 이번엔 장편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극장에서 나오면서 "이게 20살이 만든 거라고?" 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문제는 그 감탄이 백룸 자체보다 현실 세계 장면들에서 더 강하게 나왔다는 점입니다.800평 세트장이 만들어낸 공간감의 정체이 영화의 백룸 세트는 실제 800평 이상 규모로 제작됐습니다. 촬영 중 스태프들이 길을 잃었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 부분에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튜브 원작 시리즈를 보면서 당연히 CG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찍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작동하는 ..
영화 보고 나서 "그래서 이게 뭔 말이야?" 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적 있으시면, NOPE이 딱 그런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노골적으로 들이밀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근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는 게 솔직히 신기할 정도였고요. 오히려 의미가 너무 대놓고 보여서 대중 평점이 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비행접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영화관에서 예고편만 봤을 때는 솔직히 "UFO 출현 공포물이구나" 싶었습니다. 원반 모양 비행체가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영화를 보면 이 물체는 초반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비행접시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기계가 아니라 생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여기서 UAP(Unidentifi..
36년 만의 속편이 전작을 완벽하게 능가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탑건 1편을 영화관이 아니라 집에서 이틀에 나눠 봤을 정도니까요. 근데 매버릭을 다 보고 나서 온 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이게 진짜 후속작의 정석이구나 싶었습니다.후속작의 정석이란 어떤 모습일까요?탑건: 매버릭은 처음부터 끝까지 1편에 대한 오마주(Hommage), 즉 원작에 경의를 바치는 방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항공모함을 이륙하는 전투기들, 그 위로 깔리는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까지 1986년 원작의 그 장면을 거의 그대로 재현합니다. 1편을 본 관객이라면 시작 1분 만에 등줄기가 짜릿해질 수밖에 없는 구성입니다.저는 R2B: 리턴투베이스를 당시에 봤었는데, 그 영화는 F-15가 나온다는..
솔직히 말하면 기대를 거의 안 했습니다. DC 영화라는 말만 들어도 슬슬 피로감이 쌓이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뒤늦게 켜놓고 보다가, 어느 순간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있더라고요. 플래시는 단순한 히어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시간 여행과 멀티버스를 소재로 쓰면서도,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야기였습니다.스파이더맨과 닮은 플래시, 이게 우연일까요?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스파이더맨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그냥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구조 자체가 닮아 있더라고요. 플래시의 주인공 배리 앨런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힙니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도 큰아버지를 눈앞에서 잃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죠. 부모를 잃은 경험이 캐릭터의 동력..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리에서 못 일어나겠는 느낌, 혹시 아시나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를 보고 나서 저는 정확히 그랬습니다. '유전'이나 '미드소마'처럼 뭔가 거대한 의식이 완수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감정이 남았습니다.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무력감. 근데 그게 틀린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처음부터 그걸 노렸다는 걸 알고 나면 더 무섭습니다.이 영화가 불편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 미해결 플롯이란 무엇인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나름 영화를 꽤 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다음 장면을 예측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거 나오지 않을까?' 싶으면 감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어버립니다. 규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