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에서 틀어줘서 딩굴거리다 다시 보게 됐는데, 두 번째인데도 손에서 리모컨을 내려놓질 못했습니다.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면 그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 '헌트'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안기부 요원들의 스파이 게임을 그린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37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인 감독으로서는 이례적인 흥행 성과를 기록했습니다.각본 완성도 — 이 영화가 단순 액션이 아닌 이유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몇몇 장면이 뜬금없다고 느꼈습니다. 같이 봤던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네가 그 시대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런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번째 볼 때는 198..
마블 영화 보다가 진짜로 운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저는 이후로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를 보고 나서, 극장에서 혼자 꽤 오래 울었습니다. "마블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꽤 있는데, 이 영화만큼은 그 믿음을 직접 검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배경과 맥락: 제임스 건이 10년 동안 뭘 만들었나일반적으로 마블 영화는 "잘 만든 공장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볼거리는 있는데 개성은 없다는 거죠. 저도 페이즈 4 이후 마블 영화들을 보면서 그 말에 꽤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는 그 기준으로 보면 확실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제임스 건 감독은 1편부터 3편까지 각본과 연출을 전부 혼자 맡았습니다. 마블이라는 거대한 스튜디오 시스템, 즉 MCU(Marvel Cinema..
극장에서 나오면서 "좋은 영화다"라는 생각과 "근데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 적 있으신가요? 스즈메의 문단속이 딱 그랬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압도적인 작화는 여전했고, 이야기의 뼈대도 탄탄했는데,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묘하게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이 영화, 일본인과 외국인이 보는 게 정말 다른가요?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작품을 꽤 좋게 봤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나쁘게 보는 분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이 두 반응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가 있거든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 즉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지는 세 번째 작품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셋 중에 가장 잘 짜인 구조를 갖고 있습..
1969년 8월, 찰스 맨슨이 이끄는 맨슨 패밀리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포함한 다섯 명을 살해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바로 그 해, 그 할리우드를 무대로 자신의 아홉 번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복수극이나 액션을 기대했는데 전혀 다른 온도의 영화가 시작됐거든요.타란티노가 1969년에 바친 것 — 웨스턴에 대한 사랑영화의 배경이 된 1969년은 단순히 과거가 아닙니다. 68혁명(1968 Revolution)이 휩쓸고 간 직후, 권위주의적 질서가 무너지고 히피 문화가 절정에 달하던 바로 그 시점입니다. 여기서 68혁명이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번진 반체제·반권위주의 운동으로, 수직적 사회 구조를 수평적·..
솔직히 저는 12.12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현대사 자료를 나름 챙겨봤고, 5공 드라마도 빠짐없이 봤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 이거 제대로 모르고 있었구나"였습니다. 정리된 텍스트로 아는 것과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을 통해 체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하나회라는 조직, 실제로 얼마나 무서운 집단인가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몰입했던 부분은 전두광이라는 인물 자체보다, 그 인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구조였습니다. 그 구조의 핵심이 바로 하나회입니다. 하나회란 1951년 경남 진해에서 재개교한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조직으로, 쉽게 말해 군 내부의 비공식 카르텔입니다. 공식 지휘 계통 위에 또 하나의 충성 라인을 깔아..
극장에서 혼자 손수건을 꺼내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한 장으로 세 번. 마지막엔 미처 손도 못 대고 그냥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다행히 직장 후배들보다 바깥 좌석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체면치레는 했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픽사가 이번엔 죽음을 다룬다고 했을 때만 해도 '또 울리려고 작정했구나' 정도였는데, 코코는 그 이상이었습니다.픽사가 처음으로 정면 돌파한 뮤지컬의 세계코코는 픽사의 첫 번째 본격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입니다. 여기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란 단순히 OST가 좋은 작품이 아니라, 노래 자체가 극의 서사를 이끌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대사 대신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을 말합니다. 그동안 픽사 작품에 삽입곡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음악이 곧 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