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에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워낙 흔하게 써먹는 설정이라 또 그 패턴이겠거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를 끝까지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피가 섞였으면 가족이고, 아니면 남인가?" 그 물음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맴돌았습니다.가족의 정의: 핏줄이 아니라 쌓인 시간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장면이 있습니다. 두 가족이 처음 만나 사진을 찍는 시퀀스입니다. 노노미야 가족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딱딱하게 정자세로 카메라 앞에 섭니다. 반면 사이키 가족은 어른들이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단 ..
8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가 극장에서 1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역시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은 제가 본 가족영화 중에서 가장 솔직하게 가족을 해부한 작품입니다. 찬양도 없고, 억지 화해도 없습니다. 그냥 이 집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고, 그래서 더 마음에 걸립니다.콩가루 가족이라서 더 현실적이다후버네 가족을 처음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이 집,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성공 강의를 팔고 다니는데 정작 본인은 파산 직전인 아버지 리처드, 남편이 잘 될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가정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어머니 셰릴. 이 두 사람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드라마가 됩니다.여기에 자살 ..
다 보고 나서 한동안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1995년 개봉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영화 세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바이블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반전 하나 없는 영화인데 왜 이렇게 오래 남는 걸까 — 그 질문을 따라 이 글을 씁니다.모순 구조로 읽는 세븐 — 핀처가 설계한 불편함의 정체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이 영화가 왜 명작인지 바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7가지 죄악을 테마로 한 연쇄 살인이라는 설정 자체는 단순하고, 반전다운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볼 때 비로소 보이더군요.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모순(contradiction)으로 설계돼 있는지를. 여기서 모순이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라, ..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좀비 영화라서 찾아본 게 아닙니다. 대니 보일 감독 영화라서 봤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대 포인트 자체가 달랐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는 그 지점에서 저는 오히려 납득이 됐습니다. 망작이라는 말이 워낙 많아서 극장 가려다 말았던 분들, 그 선택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장르 기대를 버려야 보이는 것들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불만이 뭔지 아십니까. "좀비 영화인데 좀비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영화 속 갈등 구조는 인간 대 인간으로 짜여 있고, 좀비 떼가 창궐하는 지옥도는 몇 번 나오지 않습니다. 1편보다 좀비 관련 시각적 장면이 오히려 적습니다.장르 컨벤션(genre conventi..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말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거장의 회고는 종종 자기 찬양으로 흐르니까요. 그런데 2시간 30분이 지나고 나서 시계를 확인했을 때, 그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파벨만스》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닙니다. 삶의 비극을 어떻게 예술로 통제하는가에 대한, 스필버그 본인의 가장 사적인 고백입니다.자전적 영화가 보편적 가족 이야기가 되는 방식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스필버그의 이야기인데 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전적 영화(autobiographical film)란 감독 본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을 말합니다. 자전적 영화는 자칫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로 흘러 관객과의 거리가 생..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 이후로 다시 이 정도 규모를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거 진짜 잘 만들었다." 모로코 현지 로케이션으로 찍은 아프리카 내전 탈출극이,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도착했습니다.한국영화 시스템이 도달한 수준 — 프로덕션제가 직접 스크린으로 보면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연기도, 스토리도 아니었습니다. 300명 넘는 현지 보조 출연자들이 뛰어다니는 야외 시퀀스, 그 혼돈이 스크린 위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졌습니다. 이런 장면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여기서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프리프로덕션이란 본 촬영 전 기획, 로케이션 섭외, 스태프 구성, 리허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