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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프로덕션, 오월동주, 신파절제)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 이후로 다시 이 정도 규모를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거 진짜 잘 만들었다." 모로코 현지 로케이션으로 찍은 아프리카 내전 탈출극이,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도착했습니다.한국영화 시스템이 도달한 수준 — 프로덕션제가 직접 스크린으로 보면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연기도, 스토리도 아니었습니다. 300명 넘는 현지 보조 출연자들이 뛰어다니는 야외 시퀀스, 그 혼돈이 스크린 위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졌습니다. 이런 장면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여기서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프리프로덕션이란 본 촬영 전 기획, 로케이션 섭외, 스태프 구성, 리허설 .. 2026. 6. 25.
한산: 용의 출현 (배우, 학익진, 명랑) 솔직히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는 괜히 보기 싫은데 입소문 한 번 믿어보자 싶어서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원래 전쟁영화는 엄청 선호하지도 않고, 명량도 그냥 통으로 건너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산은 달랐습니다. 보고 나서 "이거 괜찮은데?"가 아니라 "이거 잘 만들었다"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전편을 안 봐도 되는 이유, 배우들 이야기한산이 명량의 프리퀄(prequel)이라는 점이 사실 처음엔 걸렸습니다. 프리퀄이란 기존 작품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사건을 다루는 후속작을 뜻하는데, 보통 전편을 봐야 맥락이 닿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한산은 명량을 안 본 저도 전혀 불편함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편 없이 이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완결된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 2026. 6. 25.
오펜하이머 (3시간, 구조, 킬리언 머피, 43명) 3시간짜리 영화를 보러 가면서 중간에 졸지 않을 자신이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솔직히 저도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체감 상영 시간이 두 시간도 안 됐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뭔가 다른 영화였습니다.3시간이 짧게 느껴진 이유영화는 크게 세 페이즈로 나뉩니다. 핵 개발 이전, 맨해튼 프로젝트 진행, 그리고 핵 투하 이후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주도한 원자폭탄 개발 계획으로,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총책임자를 맡았던 실제 역사적 사건입니다.제가 특히 압도됐던 건 초반 핵 개발 이전 파트였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이론 물리학자로서 양자역학의 세계에 빠져들던 시절을 원자의 움직임, 별의 붕괴 같은 이미지로 시각화해.. 2026. 6. 25.
퍼스트 카우 (서부극, 두 사람, 화면비, 우정) 서부극인 줄 알고 틀어놨다가 어느 순간 쿠키 굽는 장면에 홀딱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 영화 보면서 딱 그랬습니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는 총도, 결투도, 말달리기도 없는 서부극입니다. 그런데 보고 나면 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쿠키와 우유, 이게 서부극 맞나요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아무 정보도 없이 앉았습니다. 포스터에 소 한 마리와 두 남자가 있어서 막연히 개척 시대 버디 무비겠거니 했는데, 첫 장면부터 뭔가 달랐습니다.영화는 1820년대가 아니라 현재에서 시작합니다. 이른바 프롤로그(prologue) 시퀀스라고 부르는 구성인데, 여기서 프롤로그란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배치되는 도입부 장면을 말합니다. 한 여성이 개와 함께 컬럼비아 강변을 산책하다 .. 2026. 6. 24.
드라이브 마이 카 (원작, 치유, 호불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을 바탕으로 2021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3시간짜리 영화라는 말에 솔직히 조금 겁먹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중간에 나오고 싶은 순간은 없었습니다. 다만 좋다고 자신 있게 추천하기도, 별로라고 잘라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 영화였습니다.원작과 영화 사이, 얼마나 달라졌나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 단편입니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같은 단편집 안에 있는 세헤라자드, 그리고 목록에 없던 또 다른 이야기의 모티프까지 끌어와 한 편의 장편으로 재조립했습니다. 여기에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영화 안에 또 하나의 레이어로 삽입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른바 극중극(劇中劇) 기.. 2026. 6. 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의 평범성, 사운드, 현재성)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란 으레 수용소 안의 참상을 정면으로 들이밀거나 눈물을 강요하는 방식일 거라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달랐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악의 평범성 — 루돌프 회스 가족의 일상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개념이 바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었습니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란 거대한 악이 괴물 같은 개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무사유(thoughtlessness), 즉 생각하기를 멈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개념입니다. 아렌트가 1963년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며 정식화한 이 개념은.. 2026.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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