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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요도 사건, 이항대립 구조)

by 주.만.지 2026. 7. 7.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굿 뉴스예요, 배드 뉴스예요?"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 있으십니까? 변성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를 보고 난 뒤 정확히 그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변성현 감독 특유의 과잉이 또 나오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근데 다 보고 나서 이건 뭔가 다르다는 걸 바로 느꼈습니다.

1970년 요도 사건이 원형인 실화 기반 구조

《굿뉴스》의 뼈대는 1970년 실제로 일어났던 요도 납치 사건입니다. 일본 극좌 무장단체인 적군파(赤軍派) — 당시 전 세계에 퍼져 있던 극좌 테러리스트 조직 중 하나로, 혁명을 위해 무력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그룹 — 소속 대원들이 일본 민간 항공기를 공중 납치해 평양으로 향하려 한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국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속이기 위해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배경을 바꾸는 작전이 시도됐으며, 납치범들이 창밖으로 노스웨스트 항공 표식과 흑인 병사를 발견하고 "평양에 흑인이 있어?"라며 동요했다는 디테일까지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정말 놀랐던 건, 너무 황당해서 창작이겠지 했던 장면들이 대부분 실화였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이 소재를 단순한 첩보 액션이나 감동 실화로 소비하지 않고 블랙코미디(Black Comedy) 장르로 풀어낸 선택이 탁월합니다. 블랙코미디란 인간의 어리석음, 권력의 부조리, 역사의 아이러니를 웃음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장르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 관료, 한국 중앙정보부, 테러리스트 모두를 한 치의 예외 없이 날카롭게 비틀어 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자본주의가 인간을 가격으로 본다고 비판하면서도, 막상 마지막에 차관 한 명을 기준으로 인질을 나눠 내보내는 식으로 스스로 계급을 매깁니다. 이 아이러니를 차갑게 응시하는 시선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저는 이전 작품들에서 변성현 감독이 블랙코미디적 감각을 갖고 있다는 건 느꼈지만, 매번 과잉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한당》의 황당한 설정, 《길복순》의 일부 오글거리는 장면들. 근데 《굿뉴스》에서는 그 과잉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대신 실화 고증이 영화의 땅바닥을 단단하게 다져주기 때문에 아무리 황당한 유머가 튀어나와도 허공에 뜨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닻이 있으니까요.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이 균형이 유지됩니다. 일본 배우들은 장르적으로 양식화된 연기를 하고, 한국 배우들 역시 저마다의 온도로 톤을 맞춥니다. 유오성은 중앙정보부장 역에서 1분이 넘는 롱테이크 장면을 혼자 끌고 가는데, 로우 앵글(Low Angle) — 카메라를 피사체보다 낮은 위치에서 올려다보듯 찍는 촬영 기법으로 인물에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 로 잡힌 그 장면은 연출이 배우를 얼마나 신뢰하는지가 그대로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 1970년 요도 납치 사건이 원형으로, 주요 전개와 구체적인 디테일 상당수가 실화와 일치
  • 블랙코미디 장르로 일본 관료·한국 중앙정보부·테러리스트 모두를 전방위 비판
  • 실화 고증이 영화의 구조적 토대를 이뤄 황당한 유머도 현실감 있게 착지
  •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의 연기 스타일 차이가 이질감 없이 맞물리며 시너지 발생
요약: 요도 사건이라는 실화가 단단한 땅바닥이 되어, 블랙코미디의 유머가 허공에 뜨지 않고 현실에 꽂히는 것이 이 영화의 첫 번째 성취다.

이항대립 구조가 만들어 내는 영화의 두께

《굿뉴스》를 단순히 재미있는 첩보 블랙코미디로 보고 끝내면 절반밖에 못 본 겁니다. 영화의 진짜 힘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 구조에 있습니다. 이항대립이란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 쌍이 텍스트 전체를 지배하면서 주제를 형성하는 서사 기법입니다. 달의 앞면과 뒷면, 굿 뉴스와 배드 뉴스, 진실과 거짓, 아무개와 고명이라는 두 인물, 하이킹과 더블 하이킹이라는 전술까지 —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둘로 쌍을 이룹니다. 심지어 기장의 영광과 치질조차 대립항으로 배치돼 있고, 재밌는 건 그 둘 다 1만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이 구조를 깨달은 건 영화의 오프닝 쇼트를 다시 떠올리면서입니다. 달을 비추다가 카메라가 하강해 조명 장비를 지나 홍경에게 도달하는 그 긴 쇼트 안에서 유리창 반사를 통해 두 인물의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보입니다. 단일한 쇼트 안에 달의 앞뒤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겁니다. 이 쇼트는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라는 트루먼 쉐이드의 인용구와 맞물립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핵심 명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뒷면에 진실이 있다는 말은 많은 영화가 해왔지만, 앞면도 거짓이 아니라는 두 번째 문장을 끝까지 견지하는 영화는 드뭅니다.

트루먼 쉐이드라는 인물 자체가 이 영화의 정수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윈스턴 처칠처럼 위대한 역사적 인물의 명언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면 암호명 아무개가 만들어 낸 가짜 인용입니다. 그런데 그 가짜 인용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가장 정확하게 압축합니다. 거짓말로 만들어진 진실. 이게 이 영화가 말하는 영화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실화를 토대로 했지만 허구인 영화가 어떻게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이 구조 자체로 증명합니다. 영화 이론에서 이를 메타픽션(Metafiction) — 허구가 스스로 허구임을 드러내면서 그 안에서 진실을 탐색하는 서사 방식 — 이라 부릅니다.

홍경이 연기하는 고명과 설경구가 연기하는 아무개의 관계도 이 구조 위에 있습니다. 고명(高名)은 이름을 높이 날리겠다는 욕망을 이름 자체에 담고 있지만, 음식의 고명처럼 핵심 재료가 아닌 보조 재료로 기능합니다. 아무개는 익명의 존재이지만 모든 판을 짭니다. 영화 마지막에 두 인물의 위치는 정확하게 역전됩니다. 아무개는 최고명(崔高名)이라는 이름을 얻고, 고명은 아버지와 똑같이 대통령 시계 하나를 받고 아무개 같은 존재가 됩니다. 이 역전은 이항대립이 단순한 대립으로 끝나지 않고 순환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한국 영화를 저는 솔직히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 구조적 완결성은 애덤 맥케이(Adam McKay)의 《빅쇼트》(출처: IMDb - The Big Short)나 《바이스》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5장 구성도 이 이항대립의 연장입니다. 1장 하이킹 — 2장 더블 하이킹, 4장 배드 뉴스 — 5장 굿 뉴스로 대립 쌍을 이루고, 그 한가운데 3장 모래성이 낀 구조입니다. 모든 이항대립이 결국 수렴하는 지점이 모래성, 즉 아무 의미도 남지 않는 헛소동이라는 것. 이 허망함이야말로 영화가 가장 정직하게 내뱉는 결론입니다. 블랙코미디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그 장르가 가진 허무주의를 끝까지 지켜낸 영화입니다. 제가 보기에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 완성도는 나오기 어려웠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극장 개봉 압박이 없었기에 감독이 구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 영화 산업 구조에 대한 연구 자료를 보면, OTT 플랫폼이 창작자의 편집 자율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 이항대립 구조가 플롯·인물·시각·개그 포인트까지 영화 전체를 관통
  • 트루먼 쉐이드라는 가짜 인용이 실화 기반 허구 영화의 본질을 메타픽션적으로 증명
  • 아무개와 고명의 위치 역전이 이항대립의 순환적 속성을 보여주며 영화를 닫음
  • 5장 구성의 3장 모래성이 모든 이항대립이 수렴하는 허무의 정점으로 기능
요약: 이항대립이라는 한 가지 원리가 인물·플롯·구조·주제 모두를 일관되게 꿰뚫으며, 이것이 《굿뉴스》를 단순한 블랙코미디가 아닌 정밀하게 설계된 작품으로 만드는 핵심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굿 뉴스가 굿 뉴스인지 배드 뉴스인지 결국 당신이 어디 서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그 마지막 질문이 계속 맴돌았거든요. 저는 이게 변성현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분명히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작품들의 장점만 골라 버무린 느낌이랄까요. 《킹메이커》의 정치적 시선과 《불한당》의 통통 튀는 에너지가 이번엔 제대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오프닝 쇼트 한 장면만 보고 나서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대략 파악될 겁니다. 그만큼 첫 장면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qnTqLZP8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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