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고 나서 "그래서 이게 뭔 말이야?" 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적 있으시면, NOPE이 딱 그런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노골적으로 들이밀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근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는 게 솔직히 신기할 정도였고요. 오히려 의미가 너무 대놓고 보여서 대중 평점이 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접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예고편만 봤을 때는 솔직히 "UFO 출현 공포물이구나" 싶었습니다. 원반 모양 비행체가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영화를 보면 이 물체는 초반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비행접시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기계가 아니라 생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UAP(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즉 미확인 공중 현상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기존에 쓰던 UFO라는 말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미국 국방부도 공식 보고서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출처: 미국 국방부 공식 발표). 영화 속 대사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하는데, 조던 필 감독이 현실의 담론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꽤 정교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일반적으로 SF 영화에서 비행접시는 기계 문명의 산물로 그려지는데, 이 영화는 그 고정관념을 뒤집어서 외계 생물체를 해파리나 가오리처럼 움직이는 동물로 묘사합니다. 처음에는 원반처럼 보이다가 점점 유기적인 형태로 변해가는 시각 디자인은 관객에게 일종의 속임수를 치는 겁니다. 이걸 눈치채는 순간부터 영화가 완전히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 예고편에서 원반형으로 보이는 것은 의도된 미끼로, 관객이 기계 비행체를 기대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 영화 중반부까지 외계 존재는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며, 이 점이 상어나 대형 포식자의 사냥 방식과 구조적으로 같습니다
- 외계 생물체에게 붙인 이름 '진 재킷(Jean Jacket)'은 말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동물과 인간의 관계라는 영화의 핵심 테마를 상징합니다
스펙터클을 찬미하면서 동시에 경고합니다
이 영화를 두 번 봤다는 분들이 "뭘 본 건지 모르겠다"고 하는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닙니다. 표면만 따라가면 외계 괴물 출현 이야기이고, 그게 전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보는 내내 이 영화가 스펙터클(spectacle), 즉 거대하고 충격적인 볼거리를 소비하는 인간의 본능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스펙터클이란 단순히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구경거리로서 소비되는 모든 시각적 사건을 뜻합니다.
영화 속 핵심 대사인 '나쁜 기적(bad miracle)'이 그 압축입니다. 기적이라는 단어에 나쁘다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게 이미 역설적인데, 이 말이 지칭하는 장면이 바로 비극의 현장에서도 홀로 꼿꼿이 서 있는 신발 한 짝입니다. 끔찍한 참극 속에서도 무언가는 기이하게 질서를 유지한다는 그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자가 트라우마 대신 집착을 키워간다는 설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화려하고 유쾌한 광경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뉴스를 켜보면 화재, 폭발, 전쟁 장면이 반복 재생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공포스러운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오히려 더 오랫동안 시선이 머무릅니다. 조던 필은 그 심리를 영화의 규칙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외계 생물체와 눈을 마주치면 잡아먹힌다는 설정은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라, '나쁜 기적을 반복 소비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장르적 문법으로 치환한 겁니다.
메타영화적 구조, 이 영화는 영화 찍는 과정 자체입니다
이 부분이 제가 NOPE을 "말도 안 되게 끝내주는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입니다. 메타영화(meta-cinema)란 영화가 영화 자체를 소재로 삼거나 영화 제작 행위를 반영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NOPE은 외계인과 싸우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투하는 제작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들의 목표가 외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촬영하는 것이라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계속 다운그레이드됩니다. CCTV에서 수동 필름 카메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19세기 방식의 고정 카메라로 후퇴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진과 영화의 기원으로 데려가는 과정입니다. 19세기 사진작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가 말이 달리는 모습을 12대의 카메라로 연속 촬영한 실험이 있었는데(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자료), 이것이 사실상 영화의 전 단계 기술로 평가받습니다. NOPE의 남매 가족은 그 말 위에 탄 기수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구도는 이렇습니다. 하늘은 스크린이고, 외계 생물체는 카메라처럼 먹잇감을 흡입하고, 지상의 인간들은 그것을 다시 카메라로 찍으려 합니다. 두 카메라의 대결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구도를 인식하는 순간부터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든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블루스크린처럼 광활한 캘리포니아 하늘을 배경 삼아 UFO를 하나의 피사체로 삼아 촬영에 성공하는 이야기, 이게 영화라는 매체에 바치는 러브레터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 외계 생물체의 흡입구 부분이 사각형 카메라 셔터를 연상시키는 시각 디자인으로 설계된 것은 명백히 의도된 메타영화적 장치입니다
- 에메랄드가 마지막에 사용하는 우물 속 고정 카메라는 마이브리지의 연속 사진 방식과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가 말 탄 흑인 기수의 형상과 겹치는 것은, 영화사에서 지워진 이름 없는 최초의 배우를 복권하는 행위입니다
흑인 영화사와 지워진 이름들
조던 필 감독의 전작 '겟 아웃'과 '어스'를 보신 분이라면 인종 문제가 이 감독에게 얼마나 중심적인 테마인지 아실 겁니다. NOPE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적인 사회 고발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 자체 안으로 그 비판을 녹여 넣었습니다. 이 점이 저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세련됐다고 느꼈습니다.
앞서 말한 마이브리지의 연속 사진에서 말을 탄 기수가 누구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익명의 기수가 흑인이었고, 그게 바로 오제·에메랄드 남매의 조상이라는 주장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꺼냅니다. 영화 역사의 실질적인 최초 배우, 혹은 최초의 스턴트맨이 흑인이었을 수 있는데 영화 역사는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 바로 에메랄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석양 속 말 탄 오빠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축은 스티븐 연이 연기하는 주프 캐릭터입니다. 아역 스타로 반짝였다가 트라우마와 함께 업계에서 밀려난 인물. 어린 시절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을 재현하려는 욕망이 결국 파멸로 이어집니다. 이건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필요할 때 착취하고 불필요해지면 잊어버리는 할리우드 산업의 구조를 한 인물 안에 압축시킨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비판은 전면에 내세울수록 오히려 힘이 빠지는데, 이렇게 장르 이야기 안에 녹여 넣는 방식이 훨씬 더 오래 남습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결합, 그리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1998년 침팬지 참극에서도, 주프의 서프라이즈 쇼에서도, 조상의 말 위에서도 이 구조는 반복됩니다. 통제 가능하다고 믿었던 존재가 예측 불가능하게 돌변하는 순간이 이 영화의 공포입니다. 그리고 그 공포를 끝내는 방법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즉 나쁜 기적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라는 결론은 꽤나 직접적입니다. 어렵다는 글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호러냐 SF냐 블랙 코미디냐 장르 논쟁이 있는데, 저는 그냥 미스터리 호러라고 봅니다. 의미적으로 공포스러운 것을 호러라고 부른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그 자격이 있습니다. 장르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모든 장면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1998년 침팬지 장면도, 우물도, 꼬마 보안관 풍선 인형도 전부 마지막 장면에서 회수됩니다. 이런 영화가 더 많아질수록 장르의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조던 필의 이전 작품을 안 보셨다면, '겟 아웃'과 '어스'를 NOPE 전후로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세 편을 연달아 보고 나면 이 감독이 무엇을 반복하고 무엇을 매번 바꾸는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 NOPE이 한 번 더 다르게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