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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이즈 어프레이드 (미해결 플롯, 양수, 운명론)

by 주.만.지 2026. 7. 3.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리에서 못 일어나겠는 느낌, 혹시 아시나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보고 나서 저는 정확히 그랬습니다. '유전'이나 '미드소마'처럼 뭔가 거대한 의식이 완수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감정이 남았습니다.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무력감. 근데 그게 틀린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처음부터 그걸 노렸다는 걸 알고 나면 더 무섭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 미해결 플롯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나름 영화를 꽤 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다음 장면을 예측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거 나오지 않을까?' 싶으면 감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어버립니다. 규칙이 없는 게 아니라, 관객의 기대 자체를 읽고 역이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리 에스터의 전작들, 즉 '유전'과 '미드소마'는 이른바 해결의 플롯 구조를 가집니다. 여기서 해결의 플롯이란, 영화 초반에 설정된 과제나 갈등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일직선으로 쌓여 올라가 결말에서 거대한 의식처럼 완수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유전'의 마지막 의식 장면, '미드소마'의 불길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두 영화 모두 보고 나면 '아, 끝났구나'라는 완결감이 있습니다.

반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정반대입니다. 이 영화는 미해결의 플롯을 택합니다. 미해결의 플롯이란,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뒤로 되돌아가며 주인공의 존재 자체를 무화시키는 구조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아무것도 완수된 것이 없고, 오히려 있었던 것들이 지워진 느낌이 남습니다. 제가 자리에서 못 일어났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영화가 저를 어딘가에 내버려두고 끝난 기분이랄까요.

이 구조는 피카레스크 형식과도 닮아 있습니다. 피카레스크란 주인공이 여러 에피소드를 거치며 떠도는 여정 구조를 말하는데, 각 에피소드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색채를 띱니다. 1부는 심리 스릴러, 2부는 시트콤, 3부는 중세 동화, 4부는 법정 드라마. 장르가 바뀔 때마다 관객은 방향을 잃고, 그게 바로 주인공 보가 느끼는 감정과 정확히 겹칩니다.

  • 해결의 플롯: '유전', '미드소마' — 결말에서 거대한 의식이 완수되며 완결감을 줌
  • 미해결의 플롯: <보 이즈 어프레이드> — 이야기가 역행하며 주인공의 존재를 지워나감
  • 피카레스크 구조: 각 부(1~4부)가 완전히 다른 장르로 구성되어 독자적 색채를 가짐
요약: 이 영화가 불편하고 해소가 안 되는 건 감독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한 것이며, '미해결의 플롯'이라는 구조가 그 핵심입니다.

물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 양수 상징과 모성의 공포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물 장면이 계속 눈에 걸렸습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되짚어보니 물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하나의 이미지를 전편에 걸쳐 일관되게 심어놓는 감독은 흔하지 않습니다.

1부에서 정신과 의사는 주인공 보에게 "반드시 물과 함께 약을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합니다. 2부의 그레이스도 같은 말을 합니다. 3부에서는 물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4부, 즉 어머니 모나의 집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그런 장면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물이 곧 어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물의 상징은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물은 양수(羊水), 즉 어머니의 자궁 안을 채우는 액체를 의미합니다. 양수란 태아가 자궁 안에서 보호받는 환경 자체를 상징합니다. 보는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줄곧 그 양수가 부족한 상태로 살아왔고, 물이 없으면 위기에 처합니다. 이는 곧 어머니 없이는 살 수 없는 심리 상태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여기에 겹쳐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 강한 애착과 동시에 억압된 적대감을 갖는 심리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보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없으면 불안하고, 동시에 어머니가 사라지길 은밀하게 바랍니다. 정신과 의사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바로 이 지점을 직접적으로 건드립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등이 서늘했던 이유가 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히치콕의 '사이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이 뒤틀린 모성을 공포로 치환한 영화의 계보라고 한다면(출처: IMDb, Psycho(1960)),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그 계보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어머니의 자궁 자체로 회귀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영화의 마지막, 보트가 뒤집히며 어두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 상태로의 복귀입니다.

욕조 장면도 같은 맥락입니다. 보는 어린 시절에도, 중년이 된 지금도,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을 유독 좋아합니다. 욕조는 자궁의 시각적 대리물이고, 그 바깥은 공포입니다. 이 하나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나서 저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빨만한 영화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그래도 2회차를 갈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요약: 영화 전편을 흐르는 물의 이미지는 양수의 상징이며, 보의 모든 여정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는 회귀 여정입니다.

자기 운명을 알면서도 못 피하는 사람 — 운명론이 이 영화의 세계관이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어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가 없는, 그게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관계 자체에서 도망칠 수가 없는 그 기분.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감각이 극한으로 확장되는 걸 느꼈습니다. 평소 신경이 예민하고 불안을 잘 느끼는 편이라면, 이 영화가 정말 아프게 박힐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인 영역이 건드려지는 느낌이 들어서 보는 내내 ㅈ같으면서 재밌는 이상한 상태였습니다.

아리 에스터의 영화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운명론입니다. 운명론이란 인간의 의지와 선택과 무관하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철학적 관점입니다. '유전'에서 주인공 토니 콜렛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지만, 죽은 어머니가 이미 짜놓은 계획에서 단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미드소마'의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예정된 역할을 끝까지 수행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 운명론이 더 잔인한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영화 2부에서 보는 채널 78번을 통해 자신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보게 됩니다. 자기 미래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장면도 피하지 못합니다. 미리 알았는데 바꿀 수 없다는 것. 이게 이 영화가 말하는 운명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장면, 엄마를 잃고 혼비백산하는 아이가 사실은 분수에서 장난감 보트를 갖고 놀고 있었고, 엄마가 손을 낚아채는 순간 보트가 뒤집히는 그 장면이 영화 마지막의 보트 전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소름이 돋습니다.

카프카는 "나의 삶은 태어남에 대한 망설임"이라고 썼습니다. 이 문장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보의 모든 여정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되돌리고 싶은, 그 망설임의 극한화입니다. 카프카 문학의 특징인 부조리하고 탈출 불가능한 상황의 반복이 이 영화의 구조와 정확히 겹칩니다(출처: Britannica, Franz Kafka).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것은, 가족 관계는 끊을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인간관계는 연락을 끊으면 됩니다. 그런데 부모 자식 관계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끊을 수 없음이 운명론으로 번역되고, 그 운명론이 장르의 언어로 극화된 것이 아리 에스터의 영화들입니다. 유투브 쇼츠와 인스타 릴스에 길들여져 10초짜리 영상을 하루에 수백 개씩 보던 저한테, 3시간짜리 이 영화를 보면서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합니다.

  • 운명 예고 장면: 영화 초반 분수의 장난감 보트 전복 → 결말의 보트 전복을 선행 제시
  • 채널 78번: 보가 자신의 미래를 미리 목격하지만 단 하나의 사건도 피하지 못함
  • 어머니 모나: 영화 초반부터 등장은 제한적이지만 모든 사건의 설계자로 드러남
  • 카프카적 구조: 탈출 불가능한 부조리 상황의 반복이 피카레스크 형식과 결합
요약: 보가 자기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구조는, 끊을 수 없는 가족 관계를 운명론으로 치환한 아리 에스터 특유의 세계관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내린 판단은 이렇습니다. 쉬운 영화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좋아할 영화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깊은 곳을 건드리는 영화입니다. 평소 불안을 자주 느끼거나, 가족 관계에서 뭔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감독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전부 때려 박은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강하게 추천드립니다. 저는 2회차를 갈 예정입니다. 처음 볼 때 놓친 것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U8SleuKF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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