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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족, 익스트림 롱샷)

by 주.만.지 2026. 6. 29.

 

 

솔직히 처음엔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에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워낙 흔하게 써먹는 설정이라 또 그 패턴이겠거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끝까지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피가 섞였으면 가족이고, 아니면 남인가?" 그 물음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맴돌았습니다.

가족의 정의: 핏줄이 아니라 쌓인 시간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장면이 있습니다. 두 가족이 처음 만나 사진을 찍는 시퀀스입니다. 노노미야 가족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딱딱하게 정자세로 카메라 앞에 섭니다. 반면 사이키 가족은 어른들이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단 몇 초짜리 장면인데, 두 가족의 관계가 어떤 온도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료타가 게이타에게 보여주는 권위주의적인 태도 — 그게 바로 저 딱딱한 자세와 어색한 포즈로 압축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분만 아버지와 아들이지, 사실상 정서적 유대가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조용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영화를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밝힌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딸이 태어났을 때, 정작 본인은 '아빠 모드'로 전환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출산 직후 곧장 엄마가 되었는데, 본인은 딸이 "아빠 또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듣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 부모(biological parent)라는 개념 — 즉 혈연으로 연결된 사실 자체 — 이 자동으로 '아버지다움'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감독 스스로 몸으로 겪은 겁니다. 여기서 생물학적 부모란 단순히 아이를 낳은 사람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이 가족의 충분 조건이 아님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가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이 영화의 답은 분명합니다. 가족이란 본성(nature)이 아니라 역사(history)라는 것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쌓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그 과정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가족이 됩니다. 후반부에서 료타가 게이타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는 장면 — 사이키 가족이 처음부터 해왔던 바로 그 자세 — 은 그래서 단순한 사과 장면이 아닙니다. 료타가 비로소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실제로 눈물이 났던 건, 그 변화가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늦지 않았다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은 가족심리학(family psychology) 연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가족심리학이란 가족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과 심리적 역동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이 분야의 연구들은 일관되게 "정서적 유대(emotional bond)의 형성에는 의도적인 시간 투자가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정서적 유대란 서로에 대한 따뜻한 감정적 연결고리를 뜻하는데, 혈연 여부와 무관하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입양 가족 연구에서도 이 점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이 영화에서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소재 활용 방식이 있습니다. 류세이와 류다 두 아이가 같이 빨대에 바람을 불어넣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 짧은 컷에서, 감독은 '가족이란 이렇게 닮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소리와 이미지로만 전달합니다. 대사도 설명도 없이. 이런 연출 방식이 이 영화를 단순한 드라마 이상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 노노미야 가족의 경직된 사진 vs. 사이키 가족의 눈높이 사진 — 정서적 유대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압축
  • 생물학적 부모라는 사실이 곧 '아버지다움'을 보장하지 않음 — 감독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
  • 가족은 본성이 아닌 역사 — 함께 쌓은 시간과 기억이 진짜 가족을 만든다는 영화의 핵심 테제
  • 빨대 장면, 파 써는 장면 등 — 대사 없이 이미지와 소리만으로 가족의 의미를 전달하는 절제된 연출
요약: 이 영화는 혈연이 아닌 함께한 시간과 정서적 유대가 진짜 가족을 만든다고 말하며, 료타의 변화를 통해 한 남자가 아버지로 성장하는 과정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냅니다.

익스트림 롱샷이 만든 여운: 고레에다식 절제의 힘

직접 겪어보니, 영화에서 '없는 장면'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딱 그랬습니다. 아이가 7년 동안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병원에 몰아붙이는 장면, 두 가족 사이에 오가는 고성과 몸싸움 — 이런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없습니다. 아버지 료타가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은 단 한 번뿐입니다. 기차를 기다리며 차단기 앞에 멈춘 차 안에서, 갑자기 유리창을 손으로 탁 치는 것. 그 순간 흐르던 음악이 뚝 끊깁니다. 그 침묵이 어떤 절규보다 크게 들렸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에서 제가 가장 감탄한 부분은 익스트림 롱샷(extreme long shot)의 활용입니다. 익스트림 롱샷이란 피사체를 아주 멀리서 촬영해 인물이 풍경이나 공간 속에 작게 담기는 촬영 기법인데, 보통 영화에서는 이걸 맨 앞에 배치해 "여기가 어디고, 이 사람들이 어디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설정 쇼트(establishing shot)로 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베란다에서 아내가 혼자 울고 있다가 남편이 나와서 왜 우냐고 묻는 장면 — 아내가 "이 아이한테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그 장면의 마무리에서, 카메라는 갑자기 까마득히 뒤로 물러나며 두 사람을 고층 아파트 베란다의 작은 점처럼 담아냅니다.

그 전까지 두 사람의 감정을 가까이서 진득하게 보여줬던 카메라가, 마지막 순간에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겁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왜 이렇게 뭉클한지 바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코끝이 찡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거리감이 오히려 두 사람이 감당하는 감정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 — 이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교환하며 오가는 긴 차 여정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는 길을 보여줬으면 돌아오는 길은 굳이 또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관객은 거리를 이미 압니다. 그런데 감독은 돌아오는 길도 끝까지 보여줍니다. 전신주에 어지럽게 얽힌 전깃줄 사이로 차가 달리는 그 긴 화면. 이게 단순한 이동 장면이 아니라, 어긋난 것을 바로잡으려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그 길이로 표현하는 겁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 이건 연출이 아니라 거의 일기에 가깝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캐스팅도 이 영화의 연출 전략과 맞물립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우성 정도의 이미지라고 할까요 — 워낙 잘생기고 화려해서 '아버지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우입니다. 본인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이 역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오히려 료타라는 캐릭터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버지지만 아버지가 될 준비가 전혀 안 된 남자.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캐릭터의 내면 상태를 뒷받침하는 캐스팅 디렉팅(casting directing) — 즉 배우 선발이 작품의 주제 의식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방식 — 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섭니다(출처: The Criterion Collection).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료타가 6년 동안 키웠지만 보내야 했던 게이타를 다시 만나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이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카메라는 가운데에 있어서 한 명은 우에서 좌로, 한 명은 좌에서 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나란히 걷고 있는데 화면 안에서는 마주 보며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너는 내 아들이야"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용과 형식이 동시에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이건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다'라는 감각이었습니다.

요약: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센세이셔널한 장면을 모두 걷어내고 익스트림 롱샷과 긴 이동 시퀀스 같은 절제된 영화 언어로 감정의 무게를 전달하며,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캐스팅 자체가 캐릭터의 내면을 설명하는 연출 전략으로 기능합니다.

가족 해체가 일상적인 뉴스가 되어버린 요즘,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2013년작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지금도 유효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맺고 있는 가족 관계에서 나는 얼마나 '함께한 시간'을 쌓고 있는가 하고요. 피가 섞였다는 사실에 기대어 정작 같이 있는 시간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물음이 남았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들이라면, 영화가 끝나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질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xOOKyzog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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