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가 극장에서 1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역시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은 제가 본 가족영화 중에서 가장 솔직하게 가족을 해부한 작품입니다. 찬양도 없고, 억지 화해도 없습니다. 그냥 이 집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고, 그래서 더 마음에 걸립니다.
콩가루 가족이라서 더 현실적이다
후버네 가족을 처음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이 집,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성공 강의를 팔고 다니는데 정작 본인은 파산 직전인 아버지 리처드, 남편이 잘 될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가정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어머니 셰릴. 이 두 사람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드라마가 됩니다.
여기에 자살 시도 후 누나 집에 얹혀살게 된 외삼촌 프랭크가 더해집니다. 프랭크가 삶을 포기하려 했던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사랑을 잃어서도, 직업을 잃어서도 아니라 명예를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루스트 연구자로서 학계에서 최고 자리를 노리다 경쟁자에게 모든 걸 빼앗긴 것이 결정타였죠. 스티브 카렐이 이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당시만 해도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습니다. 지금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8개월째 묵언수행 중인 아들 드웨인이 있습니다. 드웨인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철학에 심취한 10대입니다. 여기서 니체란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로, 기존의 도덕과 가치 체계를 부정하고 강한 개인의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드웨인이 니체를 좋아한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이 아이가 가족 안에서 얼마나 외로운지 단번에 전달됩니다. 제가 십대 때를 돌이켜봐도, 말을 끊는다는 건 그냥 반항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보호였거든요.
캐릭터 앙상블(character ensemble)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러 배우가 각자의 역할을 살리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은 이 앙상블이 가장 잘 구현된 영화 중 하나입니다. 특히 초반 식탁 장면, 서로를 경멸하는 눈빛이 오가는데도 밥은 같이 먹는 그 장면이 제 기억에 가장 오래 남습니다.
- 리처드: 성공 9단계를 강의하지만 파산 직전인 모순적 가장
- 프랭크: 명예를 잃고 자살을 시도한 후 가족 품으로 돌아온 외삼촌
- 드웨인: 니체에 심취해 8개월째 침묵 중인 10대 아들
- 할아버지: 요양원에서 헤로인을 복용하다 쫓겨난 뒤 아들 집에 얹혀사는 노인
- 올리브: 미인대회 우승을 꿈꾸는 통통하고 천진한 일곱 살 막내딸
고물 버스가 끌고 가는 로드무비의 힘
이 영화가 로드무비(road movie) 장르를 택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로드무비란 인물들이 이동하는 과정 자체를 서사의 중심으로 삼는 장르로, 여정이 곧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닫힌 공간인 집 안에서 서로 피할 수 있다면, 버스 안에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 강제적인 밀착감이 갈등을 촉발하고, 또 화해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 버스가 보통 버스가 아닙니다. 기어가 고장 나 있어서 시동을 걸 때마다 온 가족이 내려서 뒤에서 밀어야 합니다. 차가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모두 뛰어올라타야 하죠.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웃으면서도 무언가 울컥했습니다. 아무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가족이라도, 버스를 밀어야 할 때는 함께 밀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는 캘리포니아주 레돈도비치입니다.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출발하니 편도만 1,0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그 긴 여정 동안 가족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계속해서 만납니다. 그 위기들이 클리셰(cliché)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클리셰란 너무 많이 반복되어 식상해진 표현이나 설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클리셰를 가져다 쓰면서도 매번 다른 온도로 요리합니다. 같은 재료인데 맛이 다른 것처럼요.
특히 드웨인이 자신이 색맹(色盲)이라는 사실을 여정 도중 처음으로 알게 되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파일럿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드웨인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올리브가 그에게 달려가 말없이 안아줍니다. 말 한마디 없이 그 장면 하나가 이 영화의 주제를 전부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 조나단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 부부가 이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런 장면을 보면 납득이 됩니다(출처: IMDb, Little Miss Sunshine).
미인대회 마지막 장면이 불편하면서 통쾌한 이유
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두 번째 볼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올리브가 헤드폰을 끼고 혼자 연습하는 장면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음악인지, 어떤 동작인지 영화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몰래 가르쳐주는 그 동작이 뭔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다 터집니다. 저는 첫 관람 때 정말로 예상을 못 했습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 미인대회 현장에 도착한 가족은 당황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성인 무대 의상을 입고, 어른이 짜준 안무를 로봇처럼 수행하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아동 미인대회(child pageant)는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문화 현상입니다. 여기서 아동 미인대회란 어린이를 대상으로 외모와 퍼포먼스를 심사하는 경연대회를 말합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이러한 대회가 아동의 자아상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영화는 이 대회를 직접 비판하는 대사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대신 올리브의 공연으로 모든 걸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동작, 그 음악, 그 무대는 이 기형적인 대회 전체에 대한 선언입니다. 관중 대부분은 당혹하거나 분노하지만, 가족은 처음으로 하나가 됩니다. 올리브를 위해 무대 위로 함께 올라가는 그 장면은, 제가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코끝이 찡해졌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이 결말이 감동적인 이유는 후버네가 뭔가를 이겨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올리브는 우승하지 못했고, 리처드의 9단계 이론도 성공했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더 이상 이 가족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정한 기준으로 졌지만,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이겼기 때문입니다. 드웨인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 그들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걷기로 한 것 같습니다.
명절 연휴에 가족과 보기 좋은 영화를 찾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리틀 미스 선샤인을 꼽겠습니다. 단, 온 가족이 사이좋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가족이 함께 있을 때 얼마나 서로를 갉아먹을 수 있는지도 정직하게 보여주니까요. 그 불편함을 견디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처음 보실 분이라면 올리브가 헤드폰을 낄 때마다 신경 쓰며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보실 분이라면, 할아버지가 각 가족 구성원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씩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 영화는 두 번 볼수록 더 잘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