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을 바탕으로 2021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3시간짜리 영화라는 말에 솔직히 조금 겁먹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중간에 나오고 싶은 순간은 없었습니다. 다만 좋다고 자신 있게 추천하기도, 별로라고 잘라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원작과 영화 사이, 얼마나 달라졌나
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 단편입니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같은 단편집 안에 있는 세헤라자드, 그리고 목록에 없던 또 다른 이야기의 모티프까지 끌어와 한 편의 장편으로 재조립했습니다. 여기에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영화 안에 또 하나의 레이어로 삽입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른바 극중극(劇中劇) 기법인데, 여기서 극중극이란 하나의 작품 안에 또 다른 연극이나 공연이 들어가 메인 서사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형식을 말합니다.
원작 팬들이라면 '이게 맞나?' 싶을 수 있습니다. 제가 원작 단편을 먼저 읽었는데, 영화는 원작의 분위기보다 훨씬 더 무겁고 구조적으로 복잡했습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기보다 감독이 원작을 재료로 완전히 새 요리를 만든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원작을 기대하고 들어가시면 당황할 수 있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거의 1시간에 달하는 프롤로그(prologue)입니다. 프롤로그란 본편 이전에 배치되어 이후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맥락을 제공하는 도입부를 의미합니다. 이 긴 프롤로그가 끝나고 나서야 영화 타이틀이 뜹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다 보고 나면 프롤로그가 곧 영화 전체에 대한 질문이고, 본편이 그 답에 해당한다는 구조가 보입니다. 설계 자체는 꽤 치밀했습니다.
치유의 방식, 차 안과 무대 위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이 결국 치유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그 의견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그 치유가 전달되는 방식이 굉장히 간접적이고 층위가 많아서, 감동을 받기까지 꽤 인내가 필요합니다.
영화 안에서 핵심 공간은 두 곳입니다.
- 차 안: 주인공 가후쿠와 운전기사 미사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브 900.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느냐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 무대 위: 다국어 배우들이 바냐 아저씨를 연습하고 공연하는 공간. 연극 안의 감정이 영화 안 인물들의 현실과 서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사실 극적인 대사가 나오는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뒷좌석에만 앉아 있던 가후쿠가 처음으로 조수석에 자리를 옮기고, 두 사람이 선루프를 열어 나란히 담배 연기를 올려 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대사 없이도 뭔가 풀리는 느낌, 그 잔잔한 위로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리딩(reading)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리딩이란 배우들이 촬영 전에 대본을 감정 없이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는 준비 과정을 말합니다.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가, 실제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싣게 합니다. 그 최초의 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하는 방식입니다. 영화 속 연극 리허설 장면이 바로 이 감독의 실제 작업 방식을 그대로 담은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메타영화적(meta-cinematic) 성격을 가집니다. 메타영화란 영화가 스스로 영화 만드는 과정을 반영하거나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작품을 일컫습니다.
배우들 연기가 전반적으로 건조한 편인데, 이게 감독의 의도인지 아닌지 보는 내내 헷갈렸습니다. 다 보고 나서는 의도였다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특히 한국 수어(KSL, Korean Sign Language)로 소냐 역을 연기한 유림씨는 조연임에도 제 눈을 가장 많이 끌었습니다.
호불호의 이유, 어디서 갈리나
이 영화를 두고 시네필들은 걸작이라고 하는데 일반 관객은 그냥 길고 어렵다고 하는 경우가 나뉩니다. 저는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킹받았던 지점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절정 부분에서 미사키가 가후쿠에게 "아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사입니다. 이 부분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감정적 흐름을 이해하더라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혼외정사를 철학적으로 포장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두고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됩니다. 여러 언어로 진행되는 연극 리허설, 자동차라는 밀폐 공간,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 극중극으로 삽입된 바냐 아저씨의 대사. 이 모든 장치들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제법 단단하게 묶여 있습니다.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 면에서, 이는 여러 이야기 층위가 서로 메아리처럼 반응하며 의미를 증폭시키는 중층 서사 방식입니다. 아이디어들을 배치하는 솜씨만큼은 군더더기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관람 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3시간의 러닝타임을 버틸 수 있는가 — 지루하다기보다 밀도가 높아 체력이 필요합니다.
- 상징과 은유가 많은 영화에 거부감이 없는가 — 직접적인 감정 표현보다 간접 표현이 훨씬 많습니다.
- 일본 예술영화 혹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전작(아사코, 우연과 상상)을 본 적 있는가 — 있다면 훨씬 편하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칸 국제영화제는 이 작품에 각본상을 수여했고, 이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도 수상했습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또한 이 영화는 일본영화제작자연맹이 선정한 2021년 일본 영화 흥행 상위권에 오른 작품이기도 합니다(출처: 일본영화제작자연맹).
결국 이 영화가 자신 있게 좋다고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체감의 차이 때문입니다. 영화적 장치들이 치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장치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순간마다 감정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본 예술영화나 느린 호흡의 영화에 익숙하신 분,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식 정서에 공명하시는 분이라면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영화에서 빠른 전개나 명확한 감정선을 원하신다면, 보기 전에 이 영화의 결이 어떤지 미리 알고 들어가시는 편이 낫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