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란 으레 수용소 안의 참상을 정면으로 들이밀거나 눈물을 강요하는 방식일 거라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달랐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악의 평범성 — 루돌프 회스 가족의 일상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개념이 바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었습니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란 거대한 악이 괴물 같은 개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무사유(thoughtlessness), 즉 생각하기를 멈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개념입니다. 아렌트가 1963년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며 정식화한 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홀로코스트 연구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출처: 예루살렘 아이히만 재판 기록 -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이 개념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체감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는 영화 속에서 아이들에게 새 이름을 가르쳐주고, 말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며, 라일락 가지를 함부로 꺾는 부하에게 불호령을 내립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십만 명을 죽이는 가스 학살 작전의 세부 방법을 회의실에서 보고받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한 인물 안에 아무런 모순 없이 공존한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돋는 부분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헤트비히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하녀 출신 어머니를 뒀던 하층 계급 출신의 그녀는 지금 정원을 가꾸고 이웃 부인들과 한담을 나누며 신분 상승의 절정을 누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하인이 지나가는 순간 "남편한테 말하면 아무도 모르게 태워죽일 수 있어"라고 내뱉는 장면은 짧지만 무겁게 박힙니다. 이 가족의 욕망 구조는 사실 역사 속 특수한 악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분 상승을 꿈꾸며 그 대가를 외면하는 보통 사람의 욕망과 겹칩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입니다.
사운드 연출 —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충돌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을 꼽겠습니다. 사운드 디자인이란 영화의 음향 요소 전체, 즉 대사·효과음·음악을 의도적으로 설계하여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는 이것이 거의 무기 수준으로 활용됩니다.
화면에는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수영장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그 위로 총성, 비명, 그리고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마치 백색소음처럼 쉬지 않고 깔립니다. 처음엔 크지 않아서 그냥 지나칩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뇌가 그 소리를 배경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는 걸 중반부에야 깨달았을 때, 제 자신이 좀 섬뜩했습니다. 영화 속 회스 가족이 그 소리를 일상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저도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이 컷(J-cut) 기법도 인상적으로 쓰입니다. 제이 컷이란 화면이 전환되기 전에 다음 장면의 사운드가 먼저 들리기 시작하는 편집 기법입니다. 유대인 수감자가 피 묻은 장화를 씻는 장면에서, 관객의 귀는 이미 다음 장면에 나올 독일 여성들의 수다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눈에 피가 보이는데 귀에는 자랑스러운 약탈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 충돌이 어떤 설명보다 강렬하게 이 영화의 주제를 전달합니다.
이 영화가 설계한 시청각적 충돌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벽에 관해 대화할 때 카메라는 벽을 등지고 찍기 때문에 관객은 벽을 볼 수 없음
- 정원을 자랑할 때 트래킹 쇼트로 따라가다 보면 배경으로 벽이 계속 보임
- 유대인 하인들이 화면 전경을 가로지르지만 관객의 시선은 주인 가족에게 고정됨
- 영화 시작과 끝 모두 어둠 속 비명 소리로 열리고 닫힘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 들리는 것을 놓치고, 들리는 것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을 놓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영화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관심 지대가 있으면 반드시 무관심 지대가 생깁니다.
현재성 — 열화상 카메라와 아우슈비츠 박물관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습니다. 컬러 화면 사이에 불규칙하게 끼어드는 열화상 카메라 장면입니다. 열화상 카메라(thermal imaging camera)란 물체가 방출하는 적외선, 즉 열을 감지해 이미지를 만드는 장치로, 빛이 전혀 없는 암흑 속에서도 촬영이 가능합니다. 이 장면들은 폴란드 소녀 알렉산드라가 한밤중에 강제 노역 현장 곳곳에 사과를 숨기는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인물은 나치에 맞서 저항한 실존 인물로, 감독은 90세가 된 그녀를 직접 만나 이 영화를 만드는 계기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나치들이 집 안 불을 하나씩 끄고 다닌 다음에야 소녀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빛이 사라진 세상에서 이 소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녀가 내는 체온, 즉 열뿐입니다. 저는 이 설계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빛이 없는 세계에서도 인간의 온기는 포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유일한 희망의 형태입니다.
영화 말미에 루돌프 회스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다 두 번 헛구역질을 하는 장면도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가 삼킨 것을 뱉어내려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이미 완전히 소화해버렸기 때문에 뱉지 못한다고 읽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는 끝내 토해내지 못합니다.
그 직후 영화는 현재 시점으로 점프합니다. 그가 응시한 저 멀리 작은 빛은 지금 박물관이 된 아우슈비츠의 철문 창이었고, 그 문이 열리며 청소 봉사자들이 들어와 유리 진열장을 닦기 시작합니다. 홀로코스트 기억을 보존하는 기관으로 운영 중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박물관은 현재 매년 2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받으며 증언의 현장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출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박물관).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이 영화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경고임을 그 장면 하나로 압축해 보여줍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루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저도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건 마지막 15분이었고, 중반까지는 의도적인 단조로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단조로움이 전략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도 회스 가족처럼 벽 너머의 소리에 무감각해지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좋은 사운드 환경이 갖춰진 곳에서 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 영화는 사운드가 절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