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파이어 영화인데 왜 아카데미 16개 부문 후보에 올랐을까요? 저도 처음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어제 용산 아이맥스에서 직접 보고 나왔는데, 극장 문을 나서면서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건 뱀파이어 영화가 아니다."
장르 전복: 뱀파이어 스릴러가 품은 블루스의 영혼
포스터만 보고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영화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식과 "음악 영화"라는 짧은 평 한 줄이 없었다면 지금도 모르고 지나쳤을 작품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외피는 철저히 장르 영화입니다.
배경은 1932년 미시시피 주 클락스데일. 시카고에서 갱스터로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이 폐공장을 사들여 흑인 전용 클럽 주크(Juke Joint)를 엽니다. 여기서 주크 조인트란 1900년대 초반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동자들이 주말에 모여 춤추고 음악을 즐기던 비공식 사교장을 말합니다. 법적·사회적으로 철저히 배제된 흑인 공동체가 만들어낸 해방구였죠.
그날 밤 오프닝 파티에 섭외된 신인 뮤지션 세미가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자 시간의 장벽이 열립니다. 이 영화에서 세미의 연주는 일종의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을 불러냅니다. 아나크로니즘이란 특정 시대에 속하지 않는 요소가 그 시대에 등장하는 시간적 불일치를 뜻하는데, 1932년의 클럽 안에 갑자기 DJ가 턴테이블을 돌리고 드레드락 머리의 댄서가 나타납니다. 과거의 영혼만이 아니라 블루스에서 파생된 모든 미래의 음악까지 한 공간에 불러들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시퀀스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롱테이크(long take, 편집 없이 카메라를 오랫동안 끊지 않고 촬영하는 기법)로 담아낸 이 장면은 상업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음악의 역사적 계보를 시각화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끝나자마자 뱀파이어들이 몰려옵니다. 수장인 레믹은 아일랜드 출신의 뱀파이어로, 아이리시 민요를 부르며 등장합니다. 평등주의자이자 반식민주의자로 묘사되는데, 여기서 반식민주의란 식민 지배에 저항하고 피지배 민족의 자결권을 옹호하는 정치적 입장을 의미합니다. 레믹은 아일랜드가 수백 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를 회고하며 분노합니다. 백인 악당이 인종주의자일 것이라는 관객의 예상을 정면으로 뒤집는 설정이죠.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탁월하다고 느낀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대립하는 두 집단 어디에도 단순한 인종주의자는 없습니다.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이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로 같은 주제를 비틀었다면, 라이언 쿠글러는 뱀파이어 스릴러라는 그릇에 담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꺼냅니다. 타란티노의 바스터즈가 떠오른 순간도 있었는데,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 대치 장면에서 그 느낌이 강했습니다.
흑인 문화의 계보: '죄인들'이라는 역설적 선언
왜 제목이 씨너스, 즉 죄인들일까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질문의 답이 완성됩니다. 미드 크레딧 이후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봐야 하는데, 제 경험상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진짜 무게 중심이었습니다. 그 전까지의 카타르시스 넘치는 액션 시퀀스에 이미 충분히 만족한 상태였고, 사실 거기서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영화 안에는 두 개의 흑인 공동체가 대비됩니다.
- 교회 공동체: 블루스 음악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클럽에 가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집단
- 클럽 주크 공동체: 교회에서 죄인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집단
세미의 아버지는 목사로서 아들에게 "그 길은 죄인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세미는 아버지 앞에서 블루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그 억눌린 마음을 클럽 무대에서 "I Lied to You"라는 곡으로 쏟아냅니다. 여기서 거짓말의 대상은 아버지이고, 거짓말의 내용은 "저는 블루스를 사랑합니다"라는 진실을 숨긴 것입니다.
이 영화의 화면 톤에 대해서도 따로 짚고 싶었습니다. 어둡고 대비가 강한 촬영 방식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의도적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이 화면은 흑인 배우들의 표정과 피부 톤을 그들 고유의 색으로 담아냅니다. 필름 시네마토그래피(film cinematography, 디지털이 아닌 실제 필름으로 촬영하는 방식)가 주는 질감이 이 영화의 세계관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뱀파이어 집단과 흑인 공동체의 대비도 인상적입니다. 뱀파이어들은 항상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합니다. 평등하고 하나이며 불멸입니다. 반면 클럽 안의 사람들은 서로 갈등하고 의견이 다르며 필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함께 쌓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라이언 쿠글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차이인 것 같았습니다. 개성과 갈등과 상처를 공유한 공동체의 역사가, 이념으로 묶인 획일적 집단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죠.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30년대 미국 남부는 흑인 민권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이 유효하던 시절입니다. 짐 크로우 법이란 1877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서 시행된 인종 분리 법률로, 흑인의 교육·투표·이동 등 기본권을 제도적으로 차단했던 법체계를 말합니다. 그 시절 클락스데일은 블루스의 성지로 꼽히는 실제 도시이기도 합니다(출처: Mississippi Blues Trail).
또한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올 라이브스 매터(All Lives Matter)" 담론을 알면 더 깊이 읽힙니다. 겉으로는 모든 인종의 평등을 외치지만 실질적으로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희석시키기 위해 등장한 아젠다였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습니다(출처: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레믹의 평등주의가 왜 공포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막 결투 직전 리 준 리가 비명을 지르는 걸 막는 장면이나 문 앞에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시퀀스는 저도 약간 어설프게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디테일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컸습니다.
세미는 기타를 놓았어야 했을까요, 말았어야 했을까요. 영화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직 결과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영화를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으로 만듭니다.
씨너스: 죄인들은 용산 아이맥스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가능하다면 IMAX 상영관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필름 질감과 음향이 이 영화의 절반입니다. 미드 크레딧이 끝나도 자리를 지키세요. 그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가 완전히 닫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