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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원작소설, 라이언고슬링, 아이맥스)

by 주.만.지 2026. 5. 18.

 

5년에 책 한 권 읽는 저도 손에서 못 놓았던 소설이 영화가 됐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세 번째 SF 소설 원작 영화입니다. 오늘 아침 8시 반 상영으로 보고 들어왔는데, 원작 팬으로서, 그리고 그냥 영화 한 편 보러 간 관객으로서 할 말이 꽤 됩니다.

5년에 한 권 읽는 제가 이 소설을 집어든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2023년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책을 두 권 읽었는데, 그중 하나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좋은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드 사이언스 픽션(Hard SF)이라는 장르에 속하는데, 하드 SF란 과학적 사실과 원리를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앤디 위어는 물리학과 진화생물학, 천문학적 개념을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대로 소설에 녹여냈습니다. 물리학이나 생물학에 기초 개념이 있으면 훨씬 편하게 읽히지만, 전혀 모르더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괜히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닙니다.

특히 외계 생명체와의 첫 접촉 장면에서 소통 방법을 풀어내는 방식이 압권입니다. 50년 전 보이저 탐사선 설계 당시 과학자들이 고민했던 것과 같은 질문, 즉 서로 언어도 문화도 없는 존재끼리 어떻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가를 이 소설은 아주 세련되게 풀어냅니다. 우주의 어떤 지적 생명체와도 공유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과학 법칙을 소통의 열쇠로 쓰는 발상인데, 그 순간을 읽으면서 제가 직접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얼마나 강하게 밀었냐 하면, 회사 도서 기부 공지에 "이 책 개재밌습니다. 두 번 읽으세요"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본부장님한테 전화를 받았을 정도입니다. 표현이 좀 과했던 거죠.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원작 팬이 본 영화,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더 좋았나

책을 영화로 만들면 항상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비주얼에 실망하거나, 화면으로 봐서 오히려 더 좋은 장면이 생기거나. 제가 직접 봐보니 이 영화는 두 가지가 다 있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영화와 무관합니다. 원작 소설 분량의 상당 부분이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머릿속 과학적 추론 과정인데, 이걸 영화로 다 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원작의 70%가 그레이스의 계산과 분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자신이 과학자일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이 정교하게 펼쳐집니다. 영화에서는 그 장면이 라이언 고슬링이 허우적대다가 "나 똑똑한 사람이었어"라는 한 마디로 압축됩니다. 이 한 문장이 영화의 각색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반면 눈물이 핑 돌았던 장면들은 화면으로 보니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책으로 읽으면서 눈물이 땡겼던 씬 몇 개가 있었는데, 시각화해서 보니 감정이 배가 됐습니다. 특히 외계 생명체 로키와 그레이스의 관계가 무르익는 순간들이 그랬습니다.

영화의 각색 방향성 자체는 훌륭합니다. 마션 각본가 드루 고다드, 스파이더버스 시리즈를 쓴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가 붙어 원작의 과학 퍼즐 중심 구조를 버디 무비(buddy movie) 구조로 전환했습니다. 버디 무비란 두 캐릭터의 관계와 케미스트리가 서사의 중심에 놓이는 장르 공식인데, 이 선택이 소설을 모르는 관객도 감정적으로 끌고 가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원작 팬이라면 영화 전에 책을 읽고 가는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생략된 부분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울 수 있고, 시각화된 장면에서 감동을 두 배로 받을 수 있습니다.

라이언 고슬링 원맨쇼와 CGI가 아닌 로키의 정체

이 영화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연기합니다. 제한된 우주선 세트 안에서 믿고 의지할 상대 배우 없이 감정 기반을 혼자 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됩니다.

나른하고 살짝 시니컬한 그의 특유 연기 톤이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무기가 됩니다. 과잉 연기 없이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면서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비겁한 것 같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지만, 결국 천재적인 통찰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그레이스 캐릭터와 고슬링의 연기 방식이 거의 완벽하게 맞아 있습니다.

로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눈도 얼굴도 없는 거미형 외계 생명체인데, 놀라운 점은 이 캐릭터가 CGI가 아닌 애니마트로닉스(animatronics)로 구현됐다는 사실입니다. 애니마트로닉스란 기계 장치와 조종 시스템으로 실물 크기의 인형을 움직이는 기술인데,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디지털 효과에 밀려 사용 빈도가 줄었습니다. 그 방식으로 만든 돌멩이 같은 외계 생명체가 감정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저도 실제로 로키 보면서 울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설마 했습니다.

로키를 설계할 때 충족시켜야 했던 조건들을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 얼굴 없이도 감정이 전달될 것
  • 신비롭고 낯설면서도 친근감이 있을 것
  • 그레이스의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감을 가질 것
  • 자기 종족을 대표하는 무게감을 동시에 가질 것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얼마나 공들인 작품인지를 보여줍니다.

IMAX로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아카데미 가능성

이 영화를 어떤 포맷으로 볼지 고민된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IMAX입니다.

전체 영화 2시간 40분 중 약 3분의 2가 IMAX 화면비(1.43:1)로 촬영됐습니다. IMAX 화면비란 일반 극장의 와이드 화면보다 훨씬 높은 세로 공간을 활용하여 화면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촬영 포맷을 말합니다. 단순 계산으로 IMAX 분량이 110분에서 120분에 달하는 수준인데,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보다 IMAX 비율이 많습니다.

우주 유영 장면이나 타우 세티(Tau Ceti) 항성계 주변 환경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 차이가 확실하게 납니다. 타우 세티란 지구에서 약 12광년 떨어진 태양과 유사한 항성으로, 실제 천문학에서 외계 행성 탐색 대상으로 주목받아 온 별입니다(출처: NASA Exoplanet Exploration). 소설이 이 실제 항성계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트 미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헤일메리 호 내부는 기계적으로 치밀하면서도 폐쇄적이거나 차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명 설계가 특히 탁월한데, 빛의 방향과 색감, 그림자를 활용하여 우리가 SF 영화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차갑고 폐쇄적인 우주선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공간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원작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핵심 구조를 완전히 재설계하면서도 원작의 감동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각색상 후보군에 충분히 들 수 있다고 봅니다. 천문학자 지웅배 교수가 인생 SF소설이라 부를 정도로 원작의 완성도가 높고(출처: 한국천문연구원), 그 원작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변환했는지가 심사 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봉 전 2억 4,800만 달러라는 제작비 규모에 비해 라이언 고슬링의 전작 스턴트맨이 흥행에서 고전했기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 낙관적이지 않은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야기가 다릅니다.


원작을 읽고 가면 분명히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만 봐도 충분히 좋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끝나는 게 아쉬웠습니다. 아껴 먹고 싶다는 표현이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IMAX로, 그리고 가능하면 원작 소설도 미리 한 번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CihPzqmO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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