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뭐 볼까 고민하다가 아무 기대 없이 틀었는데 2시간 30분이 그냥 사라졌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 길이를 어떻게 버티지"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타란티노의 Inglourious Basterds, 이미 명작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첫 장면부터 염통이 쫄깃해지는 긴장감
1941년,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시골 농가에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낮에 검은 제복의 독일군들이 들이닥치고, 농부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합니다. 이 짧은 도입부만으로도 이미 심장이 서늘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1장의 긴장감은 총성이나 액션 없이 오로지 대사와 분위기로만 만들어진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유대인 사냥꾼 한스 란다 대령이 느긋하게 파이프를 피우며 농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흔히 말하는 서스펜스(suspense) 기법의 교과서 같은 장면입니다. 서스펜스란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관객이 느끼는 불안과 기대의 긴장 상태를 뜻하는데, 타란티노는 이걸 총 한 방 없이 완성합니다.
술집 장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군으로 위장한 연합군 요원들이 독일 여배우 브리짓 폰 함머스마르크와 접선하던 중, 취한 독일 병사가 끼어들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국군 아치 히콕스 중위가 손가락 세 개를 잘못 펴는 순간, 영화는 폭발합니다. 저는 그 손가락 하나 때문에 이렇게 분위기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게 아직도 소름 돋습니다. 타란티노가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의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배치해서 관객을 조이는 방식이 이 장면에서 절정을 찍습니다.
코셔 푸드와 슈트루델, 란다의 진짜 의도
영화를 보면서 저도 처음엔 그냥 넘어갔던 장면이 있습니다. 한스 란다가 쇼사나에게 슈트루델과 우유를 권하는 카페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식사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코셔(Kosher) 율법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코셔란 유대교 율법에서 허용하는 식품과 식습관의 규범을 뜻하는데, 그 핵심 금기 중 하나가 고기와 유제품을 동시에 먹지 않는 것입니다. 독일식 슈트루델에는 고기 기름이 들어가며, 크림은 유제품입니다. 즉, 코셔를 지키는 유대인이라면 슈트루델을 크림에 찍어 먹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쇼사나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슈트루델은 먹었지만, 우유는 끝내 손대지 않았습니다. 란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담배를 슈트루델에 비벼 꺼버립니다. 애초에 그 슈트루델이 맛있어서 먹은 게 아니라, 쇼사나가 유대인인지 확인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의 의미를 알고 나서 다시 봤을 때, 란다의 미소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정말 섬뜩했습니다.
타란티노 영화에서 이런 서브텍스트(subtext)가 이렇게 촘촘하게 깔려 있다는 게, 킬빌보다 훨씬 정교하다고 느낀 이유입니다.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행동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를 말합니다.
타란티노식 대체 역사와 카타르시스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보는 분들이라면 히틀러가 당연히 살아서 전쟁을 끝낼 거라 생각할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설마 히틀러가 죽겠어"라는 생각으로 보다가 영화관 장면에서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Inglourious Basterds는 얼터너티브 히스토리(alternative history), 즉 실제 역사를 의도적으로 비틀어 새로운 결말을 제시하는 장르적 기법을 사용합니다. 타란티노는 실제 역사의 종결 방식 대신, 유대인 생존자 쇼사나와 바스터즈 특공대가 나치 수뇌부를 불길 속에 몽땅 태워버리는 결말을 선택했습니다. 역사에 대한 복수라기보다는, 피해자들이 주도권을 쥐는 상상력의 해방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 액션물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치즘이라는 실제 역사의 공포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완전히 전복시켜 버립니다. 영화사 연구자들도 이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서사의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서사란 기존의 서사 구조와 역사적 사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창작 방식을 의미합니다(출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제가 직접 봤을 때, 영화관 화재 장면에서 쇼사나의 얼굴이 스크린에 크게 비치던 그 순간은 진짜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표정 하나로 4년치 공포와 분노가 다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왈츠,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스 란다 역의 크리스토퍼 왈츠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악역인데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라니.
란다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상대를 완전히 장악합니다. 심문 장면에서 언어를 전환하는 순간마다 권력 관계가 미묘하게 바뀌는 것이 느껴졌는데, 이걸 왈츠는 표정 하나, 억양 하나로 다 표현해 냈습니다. 크리스토퍼 왈츠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타란티노와의 협업으로 이미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란다 캐릭터를 분석할 때 빠지지 않는 포인트가 몇 가지 있습니다.
- 란다는 상대의 심리를 먼저 읽고, 그것을 이용해 압박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뽑아냅니다.
- 쇼사나 가족이 낙농업자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유를 권한 것은, 그 자체가 심리적 지배의 도구였습니다.
- 영화 후반부에 나치의 패배를 감지한 란다가 자신의 탈출 조건을 협상하는 장면은, 그가 이념보다 생존에 충실한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란다의 이런 심리적 조종 방식은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유발하는 전형적인 기법입니다. 인지 부조화란 상대가 예상하는 상황과 실제 상황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혼란과 복종을 유도하는 심리학적 현상을 뜻합니다. 실제로 타란티노가 란다를 설계하면서 이 심리적 기제를 의도적으로 활용했다는 분석이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수 제기되고 있습니다(출처: 로저 에버트 공식 사이트).
저수지의 개들 이후로 가장 재밌게 본 타란티노 영화가 이 작품이었습니다. 킬빌도 좋았지만, 밀었다 당겼다 하는 템포 조절만큼은 Inglourious Basterds가 훨씬 위였습니다.
이 영화 아직 안 보셨다면,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겁먹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직접 겪어보니 오히려 더 길었으면 싶었습니다. 챕터 구성이 되어 있어서 각 파트가 독립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시계를 보는 걸 완전히 잊게 됩니다. 타란티노 영화가 처음이신 분이라면, 이 작품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