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돈 룩 업 (풍자, 허무감, 완성도, 다른 이유)

주.만.지 2026. 7. 30. 11:37

목차


     

    웃으면서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 묘하게 허무해지는 영화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혜성 충돌이라는 극단적 재난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인데, 보다 보면 웃음보다 씁쓸함이 더 오래 남습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 영화가 유독 다르게 읽혔습니다.

    풍자의 칼날 — 아담 맥케이가 겨냥한 것

    아담 맥케이 감독 이름을 처음 제대로 인식한 건 <빅쇼트>를 봤을 때였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그러니까 2008년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붕괴와 그로 인한 금융위기를 다룬 이야기인데, 설명하기도 어렵고 영화적으로 풀기도 어려운 소재를 재기발랄하게 해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마고 로비를 욕조에 앉혀놓고 금융 용어를 설명시키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웃깁니다.

    그런데 <돈 룩 업>을 보고 나서야 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의 특기는 과도할 정도의 풍자입니다. 여기서 풍자(satire)란 단순히 웃기는 것을 넘어서,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희화화해 비판하는 수법을 말합니다. <돈 룩 업>은 그 수법을 가장 직접적으로, 거의 날것으로 들이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올린 대통령은 지구 멸망 경고를 받아 들고도 자기 대법관 인선 스캔들 수습에 더 바쁩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코로나에 대응해 표백제 주입을 권고했다는 실제 발언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이 유사성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담 맥케이는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혜성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대입해, 그 부조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 올린 대통령의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두는 설정 → 트럼프 행정부의 이반카 트럼프 선임 보좌관 임명 사례와 겹친다
    • 백악관에 온 3성 장군이 과자 봉지를 10달러에 파는 장면 → 권력이 가진 특권 의식과 도덕적 해이를 상징
    • 발사된 혜성 요격 로켓을 갑작스럽게 귀환시키는 대통령 → 위기 앞에서 정치적 계산이 먼저 작동하는 구조
    요약: 아담 맥케이는 혜성 충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빌려 현실 권력의 무능과 부조리를 직격하는 풍자 영화를 만들었다.

    허무감의 정체 — 권력과 자본이 만드는 구조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직접 느낀 건, 웃음보다 먼저 찾아온 허무감이었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그 감각이 쌓였습니다. 기후변화든 팬데믹이든, 어차피 결정권은 우리한테 없다는 걸 영화가 너무 정확하게 짚고 있어서였습니다.

    영화 속 피터 이셔웰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같기도 하고 일론 머스크 같기도 한 이 테크 억만장자는, 혜성을 파괴하는 대신 그 안에 있는 희토류를 채굴하겠다는 계획을 제안합니다.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란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17종의 금속 원소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미래 산업의 핵심 자원이죠. 피터는 이걸 손에 넣으면 중국과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따돌릴 수 있다고 대통령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말을 믿습니다. 검증도 없이, 동료 평가(peer review)도 없이. 여기서 동료 평가란 과학계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 다른 전문가들이 해당 내용을 검토하고 오류를 잡아내는 절차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과학이 수백 년에 걸쳐 이 절차를 만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터는 그 절차를 통째로 무시합니다. 그리고 틀립니다.

    결과적으로 올린 대통령은 플랜 B조차 준비하지 않은 채 인류의 마지막 선택을 피터 한 사람에게 맡겼고, 피터의 계획이 실패하자 모든 것이 끝납니다. 자본이 권력을 움직이고, 권력이 과학을 무시하고, 그 틈에서 일반 시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 그게 이 영화가 만들어낸 허무감의 정체였습니다.

    요약: 희토류 채굴 계획을 앞세운 자본의 논리가 과학적 검증 절차를 무력화하는 과정이, 영화 전체의 허무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구조다.

    블랙코미디로서의 완성도 — 웃기면서 묵직한 이유

    제 경험상 블랙코미디는 보는 내내 웃기다가 마지막에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 나야 제대로 된 겁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돈 룩 업>은 꽤 잘 만든 블랙코미디입니다. 초중반은 솔직히 살짝 루즈합니다. 개그가 1차원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갈수록 템포가 붙고, 마지막에 가서는 예상 밖으로 묵직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민디 교수가 TV 생방송에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이게 연기가 아니라는 감각이었습니다. 야이 ㅄ새끼들아, 내가 몇 년째 똑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 거야, 하는 디카프리오 본인의 울분이 느껴졌달까요. 실제로 디카프리오는 오랫동안 기후변화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언해온 배우입니다(출처: Leonardo DiCaprio Foundation). 그 이력을 알고 나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 감정이 한 겹 더 쌓입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특별한 치장 없이 나오는데, 오히려 그게 캐릭터 디비아스키에게 잘 맞았습니다. 불편하고 거칠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진실을 계속 말하는 인물이니까요. 캐릭터와 배우의 결이 맞아떨어진 경우입니다. 조나 힐의 연기는 과장이 심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과장이 이 영화의 SNL적 질감과 맞닿아 있다고 봤습니다. 아담 맥케이 자신이 SNL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도된 텍스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의 인지부조화 효과(cognitive dissonance effect)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인지부조화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실제 행동 사이의 모순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을 말합니다. 관객은 혜성이 실제로 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등장인물들이 그걸 외면하는 걸 보며 계속 불편해집니다. 그 불편함이 웃음이 되고, 동시에 씁쓸함이 됩니다.

    요약: 초반의 루즈함을 지나면 개그 템포와 편집이 맞아떨어지며, 마지막에는 예상 밖의 묵직한 감정이 남는 블랙코미디의 교과서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혜성충돌 장르 속에서 돈 룩 업이 다른 이유

    혜성이나 운석 충돌을 다룬 재난 영화는 꽤 됩니다.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은 모두 그 공포를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방식이었고, 코미디로 풀어낸 경우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돈 룩 업>은 그 어떤 선례와도 결이 다릅니다. 재난 자체를 보여주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진짜 보여주려는 건,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입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인간들이요.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 정부의 초기 대응을 되돌아보면, 이 영화의 설정이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 알 수 있습니다. 출처: WHO 코로나19 타임라인을 보면 초기 경고가 얼마나 일찍 있었는지, 그리고 각국의 대응이 얼마나 늦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영화 마지막, 대통령과 피터를 포함한 자본주의 성공한 리더들이 새로운 행성으로 탈출해서 토착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자기 확신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자기 확신(overconfidence bias)이란 자신의 판단 능력을 과대평가해 반대 증거를 무시하게 되는 심리 편향을 말합니다. 준비도 없이, 무기도 없이, 그리고 대부분이 고령인 채로 낯선 행성에 도착한다는 설정 자체가 그 오만의 끝을 상징합니다.

    혜성 충돌 장르 중에서 제가 직접 봐온 것들 가운데 <돈 룩 업>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결국 그것입니다. 재난의 공포가 아니라, 재난을 만들어가는 인간의 구조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쿠키 영상까지 포함해서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느낌도 있고요.

    요약: 돈 룩 업은 혜성 충돌 자체보다 그 앞에서 작동하는 권력, 자본, 자기 확신의 구조를 해부한다는 점에서 기존 재난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재밌게 봤는데 기분이 영 개운치 않은 특유의 찜찜함이 있었거든요. 그게 블랙코미디가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강하게 추천할 영화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금 망설이겠습니다. 불편함을 즐길 준비가 된 분들에게는 분명히 남는 것이 있는 작품입니다. 반면 가볍게 웃고 싶은 분들께는 중반까지 루즈함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담 맥케이의 전작 <빅쇼트>를 재밌게 보셨다면 이 영화도 분명 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리아나 그란데의 곡은, 뭐, 좋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EBiVmq3o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