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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린데 재밌다는 게 말이 됩니까? 솔직히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면서 제가 매번 드는 생각이 그겁니다. 연출이 세련된 것도 아니고, 2000년대 초반 영화처럼 연기들이 따로 노는 장면도 있는데, 극장 나오면서 왜 이렇게 개운하지? 싶어요. 범죄도시2를 극장에서 봤고, 그다음엔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오자마자 또 봤습니다. 두 번 봐도 같은 장면에서 또 터지더라고요.
후속작의 딜레마, 범죄도시2는 어떻게 넘었나
영화계에서 흔히 말하는 '속편의 저주(Sequel Curse)'라는 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1편이 히트를 치면 2편은 과도한 기대와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실망을 안겨주는 현상을 뜻합니다. 1편의 신선함이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같은 공식을 반복하면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고, 공식을 벗어나려 하면 팬덤을 잃을 위험이 생기죠. 실제로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를 보면, 2010년 이후 흥행작의 속편 중 전편 대비 관객 수를 유지하거나 넘어선 사례는 전체의 30%가 채 되지 않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범죄도시2는 이 딜레마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1편의 장첸이라는 악역이 워낙 강렬했거든요. 그 텐션을 과연 2편이 넘길 수 있을까, 아니면 흉내만 내다 끝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2편은 1편을 뛰어넘으려 용쓰는 대신, 처음부터 방향을 다르게 잡았습니다.
이 영화의 전략을 영화 비평 용어로 '장르 강화(Genre Reinforcemen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장르 강화란, 이미 관객이 기대하는 장르적 쾌감을 억지로 비틀지 않고 오히려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범죄도시2는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뻔함으로 간다'고 선언하고 그 뻔함을 극한까지 밀어붙입니다. 액션 씬에서 마동석한테 맞은 상대가 그냥 쓰러지는 게 아니라 날아가요. 히어로 영화처럼요. 제 경험상 이런 과장이 오히려 더 통쾌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1편에서 등장했던 장이수 캐릭터를 2편에서 영리하게 재활용한 방식도 눈에 띄었습니다. 단순한 서비스 캐릭터가 아니라 이야기 구조 안에서 실제 역할을 맡기더라고요. 이런 연속성의 관리를 '프랜차이즈 캐릭터 아크(Franchise Character Arc)'라고 하는데, 한 편에서 끝나지 않고 시리즈 전체에 걸쳐 캐릭터가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흐름을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전편에 나왔던 인물들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다음 편의 밑밥이 된다는 거죠. 덕분에 시리즈를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완성됩니다.
- 속편의 저주를 피한 핵심 전략은 1편을 뛰어넘으려 애쓰지 않고, 장르 강화 방식으로 관객의 기대를 정면 돌파한 것
- 장이수를 포함한 전편 조연들의 프랜차이즈 캐릭터 아크 설계로 시리즈 연속성을 자연스럽게 완성
- 과장된 액션의 히어로적 연출이 오히려 장르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역설적 효과를 만들어냄
손석구가 만들어낸 것, 그리고 마동석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
제가 이 영화에서 손석구 배우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드라마 해방일지를 봤던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거기서의 손석구는 쓸쓸하고 조용한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범죄도시2의 강해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제 경험상 한 배우가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가는 걸 보며 소름이 돋은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옆구리를 가격당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 많으실 겁니다. 맞는 순간의 그 반응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어요. 이런 걸 배우 용어로 '물리적 반응 연기(Physical Reaction Acting)'라고 합니다. 공격하는 쪽보다 맞는 쪽의 반응이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가 액션 씬의 몰입도를 좌우하는데, 손석구는 이 부분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쉽게 말해, 때리는 마동석보다 맞는 손석구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씬이 여럿 있다는 뜻입니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씬, 자동차에 매달린 스턴트 씬, 지하차도 클라이맥스 장면. 제가 유독 이런 공간 활용 액션 씬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데, 단순히 주먹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강해상을 때려잡고 지하차도를 올라오는 그 장면은 사실상 영웅의 귀환을 연출하는 일종의 시각적 의식(Ritual Imagery)처럼 느껴졌어요. 여기서 시각적 의식이란, 특정 장면을 반복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연출해 관객에게 감정적 각인을 남기는 기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동석 배우가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는 좀 다른 층위에 있습니다. 보통 범죄 영화에서 관객은 악당이 얼마나 무섭고 강한지를 보면서 주인공이 이걸 어떻게 이겨낼까 긴장을 품고 지켜봅니다. 그런데 마동석 유니버스에서는 그 긴장이 없어요. 마석도가 진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으니까요. 이게 오히려 히어로 무비를 보는 것 같은 편안함을 줍니다. 한국 관객이 이 시리즈에 반응하는 방식을 분석한 미디어 연구들도 같은 지점을 짚는데, 악인에게만 무섭고 선량한 시민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마석도의 캐릭터 구조가 강력한 심리적 안도감과 대리 만족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입니다(출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악당의 사연이나 신파 코드를 잘라낸 것도 저는 높이 샀습니다. 요즘 범죄 스릴러에서 악당에게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부여하는 게 유행처럼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게 오히려 지겨웠거든요. 범죄도시2는 그냥 직진합니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고, 마석도가 때려잡으면 됩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저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두 번을 봤는데도 같은 장면에서 또 시원하더라고요. 이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석하면 뻔하고, 따지면 허술한 구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설 때의 그 기분, 뭔가 속이 뻥 뚫린 느낌은 가격 대비로 따졌을 때 제가 최근에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높은 만족도였습니다.
이미 3편 악역으로 이준혁 배우가 확정됐다고 하고, 마동석 배우 본인은 8편까지의 소재를 이미 구상해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머리 비우고 딱 자리에 앉아서 나쁜 놈 때려잡는 거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당장 보셔도 됩니다. 후회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