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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실화, 블랙코미디, 변성현, 연출)

주.만.지 2026. 7. 25. 18:36

목차


     

     

    넷플릭스를 켜다 제목만 보고 그냥 넘길 뻔했습니다. 그런데 변성현 감독이라는 걸 확인하고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2024년 10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굿뉴스>는 1970년 실제 일어났던 일본항공 납치 사건, 이른바 '요도 사건'을 모티브로 한 136분짜리 블랙 코미디입니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거 걸작이다.

    실화 기반의 설정이 이렇게 황당해도 되나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는 비극적이거나 불편한 현실을 웃음의 언어로 비트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란 단순히 우스운 상황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웃고 나서 씁쓸함을 느끼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서사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굿뉴스>의 실화 소재가 이 장르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1970년 일본 적군파(赤軍派)가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향하던 중, 한국 중앙정보부가 이 상황을 외교적 기회로 포착합니다. 비상 주파수를 낚아채 평양인 척 교신을 가로채고, 비행기를 한국 땅으로 유도하려는 작전입니다.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황당한 설정인데, 실제로 대부분이 고증을 바탕으로 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만화 '내일의 조' 언급도, 이중주차 에피소드도 실제 기록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이 사건에 한국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닙니다. 냉전(Cold War) 구도, 즉 미국과 소련이 각각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은 소련과, 한국은 미국과 군사작전권 문제까지 연루됩니다. 여기서 냉전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 진영이 직접 충돌 없이 이념과 외교로 대립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이 복잡한 국제 정세가 영화 안에서 전혀 무겁지 않게, 오히려 블랙 코미디의 연료로 사용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소재를 이런 식으로 요리한 감독의 배짱이 솔직히 좀 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 모티브: 1970년 일본항공 납치 사건 '요도 사건' — 실화 고증 비율이 상당히 높음
    • 핵심 작전: 비상 주파수를 가로채 평양인 척 교신, 비행기를 한국으로 유도
    • 국제 구도: 한·미·일·북·소 5개국이 얽히는 냉전 시대 외교 코미디
    요약: 황당하게 느껴지는 설정 대부분이 실화 고증이며, 냉전 국제 정세가 블랙 코미디의 핵심 연료로 작동한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변성현은 어떻게 다뤘나

    블랙 코미디를 잘 만드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놓고 웃기는 게 아니라 상황 자체의 아이러니와 모순에서 웃음이 새어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톤 설정이 조금만 어긋나도 그냥 불편한 영화가 되거나, 반대로 너무 가벼워져서 메시지가 날아가 버립니다. 변성현 감독이 이 줄타기를 어떻게 했느냐는 보는 사람마다 판단이 갈릴 수 있습니다.

    재미없었다는 분들도 계시고, 저처럼 내내 즐겁게 봤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아담 맥케이 감독의 작법과 꽤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출처: IMDB — The Big Short(2015)나 <돈 룩업>처럼, 실제로 심각한 사건을 겉으론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끝엔 묵직한 찜찜함을 남기는 방식 말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이 결을 제대로 살린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문데, 굿뉴스는 그 시도가 꽤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공산주의자인 납치범들이 승객의 물건을 빼앗아 '분배'하자 불만이 터져 나오는 장면, 그리고 다수결 표결을 '민주주의'라며 거부하고 만장일치를 고집하는 장면은 상당히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반대편 한국 측이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를 점심 메뉴 고르듯 다수결로 처리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장면들이 거슬리거나 가르치려 든다는 인상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이켜보면, <불한당>의 과잉과 <킹메이커>의 건조함 사이 어딘가에서 늘 균형을 못 찾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굿뉴스에서 그 단점들이 상당 부분 제거되고, 각 작품의 장점만 추려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화 같은 통통 튀는 유쾌함과 정극의 긴장감이 이번엔 꽤 잘 버무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변성현 감독은 아담 맥케이식 블랙 코미디 문법으로 냉전 풍자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필모그래피상 가장 균형 잡힌 작품을 완성했다.

    변성현 페르소나 설경구, 그리고 홍경과 류승범

    설경구 씨는 <불한당>부터 시작해서 <킹메이커>, <길복순>을 거쳐 이번 <굿뉴스>까지 변성현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입니다. 여기서 페르소나란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과 연출 스타일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배우와의 반복적인 협업 관계를 뜻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후네 도시로, 봉준호와 송강호의 관계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간 변성현 영화에서 설경구는 늘 말쑥하고 위험한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아무개'라는 이름조차 없는 암흑의 해결사로,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설경구 씨의 이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변주가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익숙한 배우가 예상을 비트는 순간, 그게 또 하나의 블랙 코미디가 됩니다.

    홍경 씨는 이번 영화에서 한국어·영어·일본어 3개 국어를 소화해야 하는 엘리트 공군 중위 역할을 맡았습니다. <약한영웅>이나 <디피(DP)>에서 보여준 다소 어수룩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결로, 이번엔 존재감이 상당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던 건 홍경 씨의 후반부 연기였는데,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

    류승범 씨는 중앙정보부 부장 역할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왔습니다. 10년 묵은 된장처럼 진하고 구수한 능청스러운 연기가, 이 영화의 블랙 코미디 톤과 딱 맞아 들어갔습니다. 일본 배우들, 특히 야마다 타카유키를 포함한 납치범 역 배우들도 과장되어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저는 그 연극적 과장감이 오히려 블랙 코미디 장르와 잘 맞았다고 봅니다. 한국 배우가 어설프게 일본어를 배워서 연기했다면 아마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겁니다.

    요약: 설경구·홍경·류승범 세 배우의 역할 분담이 탁월하며, 일본 배우들의 캐스팅은 영화의 완성도를 크게 끌어올린 신의 한 수다.

    연출이 맛있다, 그리고 아쉬운 점도 있다

    변성현 감독의 연출은 확실히 스타일리시합니다. 달이 시계로 전환되는 시각적 연결, 챕터 5개로 나뉜 구성,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4번 벽 허물기(Fourth Wall Break), 그리고 제가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는 서부극 패러디 시퀀스까지. 여기서 포스 월 브레이크란 영화 속 등장인물이 화면 밖 관객의 존재를 인식하고 직접 말을 거는 연출 기법으로, 자칫 과하면 몰입을 해치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블랙 코미디의 자기 인식적 유머와 잘 어울렸습니다.

    서부극 시퀀스는 그냥 기발한 게 아니라, 그 장면의 상황과 분위기가 정말 딱 맞아떨어집니다. 황야의 무법자 오마주인데, 코미디답게 위트 있으면서도 결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다 했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중반 이후 블랙 코미디적 포인트들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지기 시작하고, 그 타이밍에 긴장감이 살짝 떨어집니다. 이건 장르 특성상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웃음으로 채우든, 긴장감으로 채우든 둘 중 하나를 좀 더 밀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구간이 중후반부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은 없었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136분짜리 영화에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런 한국 영화를 애타게 기다렸다고 한 평가에 저도 진심으로 동감합니다(출처: 씨네21). 한국영화 특유의 쪼임이랄까, 상업적 계산이 앞서는 느낌이 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극장 개봉이었다면 흥행은 장담하기 어려웠겠지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이 영화에게 오히려 잘 맞는 옷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최고 명장면: 황야의 무법자 오마주 서부극 시퀀스 — 블랙 코미디와 서사가 가장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 돋보이는 연출: 달과 시계의 시각적 연결, 챕터 구성, 4번 벽 허물기
    • 유일한 아쉬움: 중반 이후 블랙 코미디 포인트 예측 가능성 상승, 긴장감과 웃음 사이 어중간한 구간 존재
    요약: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위트 있는 장면들이 돋보이지만, 중반 이후 긴장감과 웃음 사이에서 살짝 힘이 빠지는 구간이 있다.

    정리하자면, <굿뉴스>는 변성현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제가 가장 재밌게 본 작품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 그랬듯,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블랙 코미디의 언어로 비틀어 날카로운 풍자를 남기는 방식의 한국판 걸작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한국 블랙 코미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저는 앞으로 이 영화를 먼저 꺼낼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구독 중이시라면 별다른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니, 시간 날 때 한번 재생해 보시길 권합니다. 단, 너무 큰 기대를 품고 보시면 오히려 취향에 따라 실망할 수 있습니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후회 없을 선택일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DnSRqtNr_0&list=PLGVL4jSsBr-44eGgF8lu3x9LfnUAf3tLh&index=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