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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원 컨티뉴어스 숏, 반전 메시지)

주.만.지 2026. 7. 23. 20:22

목차


     

     

    아카데미 강력 후보라는 말에 솔직히 좀 긴장하면서 틀었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무언가 달랐습니다. 카메라가 두 병사를 따라 참호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순간, 이건 그냥 전쟁 영화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영화 1917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두 병사가 적진을 가로질러 아군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전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이 이 영화의 절반이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낀 건 긴장감이었습니다. 특히 독일군 전투기가 불시착하는 장면 근처에서 몸이 저렸습니다. 진짜입니다. 극적인 액션도, 총격전도 아닌데 배경음과 공기의 밀도만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는데, 바로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 기법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원 컨티뉴어스 숏이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 없이 하나의 테이크로 촬영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법을 말합니다. 실제로는 숨겨진 컷이 존재하지만, 관객은 그 연결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이 기법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1948년작 <로프>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버드맨>이 같은 방식으로 주목받은 바 있죠. 그런데 1917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즉 긴 시간 동안 카메라가 멈추지 않고 장면을 담아내는 방식과도 결이 다릅니다. 쿠아론의 롱테이크가 한 공간 안에서의 호흡이라면, 1917의 그것은 광활한 야외를 가로지르며 두 시간 내내 이어집니다. 촬영을 맡은 로저 디킨스는 <쇼생크 탈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찍은 거장입니다. 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것(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은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같이 뛰다 온 느낌이었습니다. 숨이 찼습니다. 뭔가 대단히 연극적인 감각도 있었는데, 거대한 무대 위에서 막이 쉬지 않고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 샘 멘데스가 연극 연출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제야 그 독특한 공간 감각이 설명이 됐습니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수평적으로 따라가다가도 스코필드가 참호 위로 올라갈 때, 독일군 참호로 내려갈 때, 폭포로 떨어질 때만큼은 수직 이동을 보여줍니다. 수평은 삶의 공간, 수직은 죽음의 공간으로 향하는 경계선인 셈입니다.

    • 원 컨티뉴어스 숏: 편집 없이 하나의 테이크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법. 히치콕의 <로프>에서 처음 시도됨
    • 롱테이크: 카메라가 오랜 시간 멈추지 않고 장면을 담는 촬영 방식. 쿠아론의 방식과 차별화된 광활한 야외 롱테이크
    • 트래킹 숏: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 이동하며 긴박감을 조성하는 기법. 참호 진입 장면에서 극적으로 사용됨
    • 카메라 수직 이동: 죽음의 공간 진입을 암시하는 연출 장치로 반복 등장
    요약: 원 컨티뉴어스 숏과 트래킹 숏이 만들어내는 몰입감이 1917을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닌 체험으로 만든다.

    반전 메시지,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솔직히 처음에는 이걸 전쟁 액션 어드벤처 정도로 봤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모르도르를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주인공이 험지를 돌파해나가는 여정의 영화라고요. 그런데 보고 나서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건 액션 장면이 아니라 훈장 이야기였습니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받은 훈장을 와인 한 병과 바꿔 마셨다고 말합니다. 훈장은 군인의 명예와 충성을 상징하는 물건인데, 스코필드에게 그건 그냥 술 한 병짜리였던 겁니다.

    이 장면이 그냥 지나가는 대사처럼 보이지만, 영화 전체의 반전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반전 메시지란 전쟁 자체를 미화하거나 영웅화하지 않고 그 무의미함과 비극성을 드러내는 관점을 뜻합니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배경으로 이 메시지는 더욱 처절하게 작동합니다. 실제로 솜 전투 첫날 영국군 6만여 명이 단 하루 만에 사망한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출처: Imperial War Museum). 그 숫자가 영화 속 스코필드의 무표정한 눈빛과 겹쳐지면서, 훈장이 얼마나 공허한 상징인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사실 스코필드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포탄이 바로 옆에 떨어져도 참호 안 제자리를 지키려는 병사들, 명령을 받아 공격에 나서는 간부들, 그리고 블레이크처럼 형을 살리려다 허무하게 죽어가는 청년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표면적인 주인공 스코필드 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살아낸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을 주인공으로 말하고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맡은 임무를 수행하려는 그 처절한 모습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체리 꽃잎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스코필드 곁으로 흩날리는 체리 꽃잎은 희생된 젊은 영혼들의 이미지입니다. 블레이크가 생전에 체리 나무 이야기를 했고, 그 꽃잎이 죽음의 강물을 흐른다는 것. 이 상징은 설명 없이도 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코필드가 혼자 체리 나무 아래 앉아 아내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나그네의 여정이 마침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미국 민요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즉 '나는 그곳으로 가는 나그네'라는 노래가 흐르던 장면과 연결되면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닫혔습니다.

    요약: 훈장과 와인의 대비, 체리 꽃잎, 방향을 달리하는 달리기 등 상징들이 모여 반전 메시지를 완성한다.

    1917은 전쟁 영화이면서 동시에 반전 영화입니다. 서사가 단순하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인물 관계와 방대한 서사 대신, 하나의 임무를 향해 달리는 한 사람의 여정에 모든 것을 집중시켰습니다. 그 덕분에 관객은 스코필드가 아닌 자기 자신이 그 들판을 달리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건 제가 직접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한 감각입니다.

    흔한 전쟁 영화를 기대하셨다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촬영 예술과 반전 메시지, 그리고 전쟁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1917은 충분히 그 경험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에 대한 제 가장 솔직한 감상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qnd-e5BDxs&list=PLzMlWTOO8JND1pjgph7yiCPtgUdJ9EOOi&index=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