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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수첩 하나로, 생존자)

주.만.지 2026. 7. 23. 12:15

목차


     

    신부가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제보를 받고도 그냥 넘긴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게 나중에 보스턴 전체를 뒤흔든 87명짜리 사건의 단초였다는 걸 알았을 때, 그 기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저는 그 장면에서 가장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법도 경찰도 못한 걸 수첩 하나로 해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영화는 2001년 보스턴 글로브 신문사의 탐사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 전문 팀 '스포트라이트'가 가톨릭 교구 내 아동 성범죄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탐사보도란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자료를 축적하고 증언을 확보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는 저널리즘 방식을 의미합니다. 보스턴 글로브는 이 보도로 2003년 퓰리처상 공익 부문을 수상했습니다(출처: Pulitzer Prize 공식 사이트).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기자들의 무기가 수첩 하나라는 점이었습니다. 경찰처럼 수갑도 없고, 변호사처럼 법정 증거를 수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수첩이 결국 추기경도 막아내지 못한 진실을 끄집어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팀장 로비가 몇 년 전 이 사건 제보를 받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사실이 영화 중반부에 나옵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단순한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언론인이라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만드는지를 담백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저항도 노골적이었습니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명령한 문건을 교구 측이 빼돌리고, 법원 직원조차 열람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판사가 기자에게 묻습니다. "이런 걸 보도하는 게 언론입니까?" 기자는 바로 되받아칩니다. "이런 걸 보도 안 하는 게 언론입니까?" 저는 이 대사 하나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끝까지 기사를 참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추행 신부 한 명을 잡는 게 아니라, 조직적 은폐(Systemic Cover-up)를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조직적 은폐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기관 전체가 사건을 알면서도 묻어버리는 구조적 문제를 말합니다. 신부 한 명의 기사가 나갔다면 추기경은 꼬리를 자르고 끝냈을 겁니다. 70명의 증거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시스템 자체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죠.

    •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이 최종 확인한 성범죄 연루 신부 수: 70명 (초기 추정 13명에서 시작)
    • 피해를 덮은 핵심 인물: 버나드 로 추기경 — 교구 차원에서 신부들을 다른 교구로 전배 조치
    • 법원 공개 문건조차 교회 편을 든 법원 직원이 열람을 거부하는 장면이 실제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일
    • 보스턴 글로브는 2003년 퓰리처상 공익 보도 부문 수상
    요약: 스포트라이트 팀은 신부 개인이 아닌 교회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사를 참았고, 수첩 하나로 법과 경찰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부른 이유, 혹시 생각해보셨습니까

    영화 속에서 피해자 모임은 자신들을 '생존자(Survivor)'라고 부릅니다. 영화는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알았습니다. 그 일을 겪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고, 누구도 믿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분명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부들이 남자아이를 주로 노린 데는 계산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남성 피해자는 성추행을 당하면 수치심(Shame)과 함께 '남자답지 못하다'는 낙인이 덧씌워지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수치심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피해 사실을 외부로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봉쇄 기제입니다. 신부들은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이용했습니다.

    특히 한부모 가정이나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 주요 타깃이었다는 점도 영화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제가 그 부분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게 단순한 기회주의가 아니라는 겁니다. 종교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정, 신부님의 방문을 예수의 강림처럼 여기는 어머니, 심부름 하나에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느끼는 아이. 이 구조 자체를 노린 겁니다. 저런 썩을 놈들이 애초에 그 길을 택한 이유가 아이들에게 의심 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미치 개러비디언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불과 2년 전 성추행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기사가 나간 후에도, 사건이 밝혀진 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는 겁니다. 그 장면에서 답답함과 분노가 동시에 올라왔습니다. 해결된 게 아니라 겨우 드러난 것뿐이었으니까요.

    이 문제가 보스턴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출처: BishopAccountability.org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 신부 중 성범죄로 고발된 비율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례가 추가되며 집계가 늘어나고 있으며, 유럽 각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연루 교구 목록에 미국 외 유럽 지역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이 문제가 전 세계적 구조 문제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유사 사건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실수를 덮으려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 실수를 마주하고 바로잡는 힘도 같은 인간에게 있다는 걸 영화가 담백하게 보여줬습니다. 팀장 로비가 과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방식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요약: 생존자라는 단어 뒤에는 살아남지 못한 피해자들이 있고, 이 범죄는 미국 보스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현재진행형인 구조적 문제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두고 "스타워즈 이후 최고의 판타지"라는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웃어야 할지 씁쓸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즉 신문·방송 같은 전통 언론의 구독률이 줄고 유튜브와 SNS가 정보 유통을 장악한 지금, 제대로 된 탐사보도는 정말로 판타지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입니다.

    가짜 뉴스가 산업 폐기물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 '스포트라이트' 같은 영화가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표현의 자유가 살아있는 사회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영화가 실명으로, 있는 그대로 나올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꼭 한 번 보십시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ZPoyIkuBM0&list=PLzMlWTOO8JND1pjgph7yiCPtgUdJ9EOOi&index=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