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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파이더맨 등장이 예견된 영화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스크린에서 앤드류 가필드가 마스크를 벗는 순간 털이 곤두섰습니다.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부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까지 전 시리즈를 영화관에서 개근했던 보람이 그 한 장면에 다 몰려왔습니다. 이 글은 그 감동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서 씁니다.
멀티버스가 열어준 것, 20년 치 단점을 장점으로 뒤집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솔직히 약점이 많은 프랜차이즈입니다.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세 번이나 리부트(reboot)됐습니다. 여기서 리부트란 기존 시리즈를 완전히 초기화하고 새로운 배우·감독 체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토비 맥과이어의 오리지널 트릴로지(2002~2007),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그리고 톰 홀랜드의 MCU 합류까지. 같은 이야기를 세 번 우려먹었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노 웨이 홈은 그 약점을 정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멀티버스(multiverse), 즉 서로 다른 우주와 타임라인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활용해 리부트를 거듭한 역사 자체를 이야기의 연료로 쓴 겁니다. 플롯은 단순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 주문이 엇나가면서 피터 파커를 아는 존재들이 현재 우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결과 전혀 다른 타임라인의 빌런 5명과, 무엇보다 이전 두 시리즈의 스파이더맨이 동시에 등장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기획이 그냥 팬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은 설정의 차이조차 유머로 소화합니다. 거미줄을 몸에서 직접 발사하는 1대 스파이더맨을 보고 2대·3대가 경이로워하는 장면, 혼자만 외계인과 싸워본 적 없는 2대 스파이더맨의 소외감을 코믹하게 다루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쌓인 '지식'을 관객과 공유하고, 그것을 웃음과 감동으로 환원하는 방식이 매우 영리했습니다.
마블의 이런 접근은 팬덤 연구에서도 주목받습니다. 출처: Box Office Mojo에 따르면 노 웨이 홈은 전 세계 누적 18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마블 영화 흥행 상위권에 안착했는데, 이는 단순한 슈퍼히어로 액션물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을 자극하는 향수 서사(nostalgic narrative)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수치로 보여줍니다.
- 리부트 3회라는 약점 → 멀티버스로 이야기의 재료로 전환
- 설정 불일치(거미줄 방식, 사랑 상대 차이 등) → 캐릭터 간 유머와 공감의 원천으로 활용
- 역대 배우 토비 맥과이어·앤드류 가필드·알프레드 몰리나·윌렘 대포 전원 복귀 → 캐스팅 자체가 주는 감동
성장서사로 읽는 노 웨이 홈, 그리고 윌렘 대포가 찢어버린 씬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이렇게 울컥했지?"를 곱씹어 봤습니다. 결론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가장한 10대 성장서사(coming-of-age narrative)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장서사란 주인공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어른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홈커밍, 파 프롬 홈, 노 웨이 홈이라는 세 부제가 그 구조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집에서 출발해, 멀리 나가 큰일을 겪고, 돌아올 집이 없어지는 과정. 이건 성장의 고전적인 딜레마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캐릭터를 꼽으라면 저는 윌렘 대포의 노먼 오스본, 즉 그린 고블린입니다. 메이 숙모가 사망한 직후, 스파이더맨을 향해 조롱하는 씬은 제가 다 빡칠 만큼 연기로 찢어버렸습니다. 그냥 씬을 압도하더라고요. 2002년 오리지널 트릴로지 시절과 같은 배우가 20년 만에 같은 캐릭터로 돌아왔는데, 세월이 쌓인 연기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빌런을 단순히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각 빌런에게는 빌런이 되기 전 사고를 당한 순간, 즉 자유의지 밖에서 발생한 비극이 존재합니다. 닥터 옥토퍼스(Doctor Octopus)는 기계 촉수의 신경 인터페이스 오류로 이성적 판단 능력 자체를 잃은 경우입니다. 여기서 신경 인터페이스란 기계 장치가 인간의 뇌신경계와 직접 연결되어 행동을 제어하는 장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기계가 그 사람을 나쁘게 만든 겁니다. 이 설정 때문에 옥토퍼스는 치료를 받자마자 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MJ를 낙하 직전에 낚아채는 장면도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치밀하게 계산된 감정 설계입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그는 사랑하는 연인 그웬 스테이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트라우마(trauma), 즉 당사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처가 그 장면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MJ를 구하고 나서 혼자 눈물을 삼키는 앤드류 가필드의 표정을 보면서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출처: IMDb, Spider-Man: No Way Home(2021)
마지막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피터 파커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마법을 두 번 부탁하는 장면, 혹시 그 차이를 느끼셨나요? 첫 번째 부탁은 MJ와 네드를 예외로 빼달라며 다섯 번이나 조건을 바꾸는, 철저히 사적인 소년의 부탁이었습니다. 두 번째 부탁은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외 없이 모든 기억을 삭제해 달라는 어른의 선택이었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상대에게 한 부탁인데, 그 사이에 성장서사 전체가 담겨 있었습니다.
- 1대 토비 맥과이어: 그린 고블린 최후의 일격을 막으며 과거 악연과 트라우마를 치유
- 2대 앤드류 가필드: MJ를 구하며 그웬 스테이시를 잃은 죄책감을 상징적으로 씻어냄
- 3대 톰 홀랜드: 모든 기억 삭제를 자처하며 피터 파커에서 진짜 스파이더맨으로 이행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이거 볼라고 그렇게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다 봤구나." 마치 토이 스토리 3에서 오래된 장난감들을 꺼내는 장면처럼,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삼파이더맨이 같은 프레임 안에 잡히는 순간을 영화관에서 직접 봤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억이 됐습니다.
이제 새롭게 리부트되는 브랜뉴 데이 시리즈가 기다립니다. 모든 기억이 삭제된 채 홀로 눈보라 속으로 활공하며 영화가 끝난 것처럼, 다음 시리즈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입니다. 이전 시리즈를 아직 못 보셨다면, 노 웨이 홈 전에 트릴로지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이 영화가 준비한 선물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