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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 이야기, 극장에서 볼 이유 )

주.만.지 2026. 7. 19. 16:26

목차


     

    영화관에서 두통이 올 뻔했습니다. 화면이 너무 꽉 차 있어서요. 그게 칭찬입니다. 하루 쉬는 날 별 기대 없이 들어간 극장에서 웨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의 세계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나왔습니다. 『프렌치 디스패치』,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웨스 앤더슨을 처음 제대로 만난 날

    혹시 영화 한 편을 보고 감독이 누군지 찾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날은 집에 오자마자 IMDB를 켰습니다. 웨스 앤더슨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 두고 싶었거든요.

    사실 웨스 앤더슨 영화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딱 하나 봤습니다. 그것도 "뭔가 예쁜 영화"라는 인상만 갖고 있었지, 감독의 연출 철학 같은 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이번에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게 된 것도 사실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하루 쉬게 되어서 뭐라도 볼까 하다가, 예고편을 30초쯤 보고 "왠지 재밌겠다"는 감으로 오전 타임 표를 끊었습니다.

    이 영화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가상 도시 블라제(Ennui-sur-Blasé)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주간지 『프렌치 디스패치』가 폐간을 앞두고 있고,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마지막 발행본을 준비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편집장의 실존 모델이 미국 잡지 『더 뉴요커(The New Yorker)』의 창립자 해럴드 로스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던 그 잡지를 영화로 만든 셈이죠.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경, 조명, 의상, 배우의 위치, 색감까지를 총체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화면 안에 뭘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의도 전체입니다. 저처럼 영화를 가볍게 즐기는 사람도 웨스 앤더슨의 미장센이 뭔지는 이 영화 하나로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대칭 구도, 파스텔 색감, 줌과 패닝이 정확한 박자에 맞아떨어지는 그 느낌은 말 그대로 "영화가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였습니다. 무려 130개의 세트를 동원했다는 후문이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더군요.

    요약: 별 기대 없이 들어간 극장에서 웨스 앤더슨의 미장센에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130개 세트가 만들어낸 시각적 완성도는 영알못에게도 분명히 전달되었습니다.

    세 개의 이야기, 각자 다른 무게감

    옴니버스(Omnibus) 형식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옴니버스란 하나의 완결된 줄거리 대신 독립적인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의 작품 안에 묶어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하나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는 구조였다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의 각 섹션처럼 세 개의 독립적 이야기가 펼쳐지는 옴니버스 구성입니다.

    첫 번째는 베네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살인마이자 천재 화가 모세 로젠탈러의 이야기입니다. 감옥 안에서 교도관 시몬을 모델로 현대미술 작품을 그리는 인물인데, 이 챕터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이게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영화가 끝까지 답해주지 않거든요.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작품 자체인가, 아니면 그것을 팔아내는 사람의 언변인가. 줄리언이라는 수집가는 처음부터 모세의 그림을 예술로 본 게 아니라 상품으로 봤습니다. 그 불편한 진실을 웨스 앤더슨은 아무런 답도 없이 스크린에 던져놓습니다.

    두 번째는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인 학생운동 이야기로, 아무리 봐도 1968년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68혁명을 모델로 한 챕터입니다. 68혁명이란 드골 정부에 저항한 학생 주도의 사회운동으로, 이후 유럽의 여성운동·반기독교 정서·노동운동 전반에 엄청난 파급력을 남긴 역사적 사건입니다(출처: Britannica). 웨스 앤더슨은 이 무거운 사건을 특유의 가벼운 터치로 풀어내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솔직하다고 느꼈습니다. 혁명의 주역들이 결국 명확한 비전 없이 구호만 외치던 젊은이들이었다는 아이러니를 코믹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제법 날카롭습니다.

    세 번째는 납치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요리 이야기로, 중간에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챕터 중 가장 가볍게 소화되는 편이지만, 저널리스트 로벅 라이트의 위트 있는 내레이션이 잡지 칼럼을 읽는 느낌을 그대로 살려줍니다.

    이 영화의 출연진을 보면 할리우드에서 웨스 앤더슨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주요 출연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빌 머레이,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에드리언 브로디, 윌리엄 대포, 에드워드 노튼 — 웨스 앤더슨과 오랜 작업 관계를 이어온 이른바 '앤더슨 패밀리'
    • 베네치오 델 토로, 티모시 샬라메 — 각각 첫 번째, 두 번째 챕터의 중심을 잡아주는 탑 배우
    • 레아 세이두 — 베네치오 델 토로의 상대역으로, 노출 장면이 있지만 야하다기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맞는 분위기

    이 배우들이 조연이나 단역에도 기꺼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저는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단순히 친분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웨스 앤더슨의 현장이 배우들에게 어떤 경험인지 궁금해졌을 정도입니다.

    요약: 세 개의 옴니버스 챕터는 각기 다른 무게와 질감으로 펼쳐지며, 예술과 혁명과 유머를 잡지 한 권 읽듯이 경험하게 합니다.

    극장에서 볼 이유가 있는 영화인가

    그래서 이 영화, 극장까지 가야 할까요? 저는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집 모니터 앞에서 볼 때와 극장에서 볼 때 집중력 자체가 다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특히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화면 구석구석에 배치된 소품 하나, 색감 하나가 다 의도된 것이라서, 스크린이 클수록 더 많이 보입니다.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뉴요커』 특유의 재즈 감성을 음악으로 구현해낸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사운드트랙은 극장 음향으로 들었을 때 훨씬 살아납니다. 데스플라는 이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귀도 즐겁다는 말이 이 영화에서만큼 딱 맞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영화는 아닙니다. 옴니버스 구성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야기가 세 번 끊기는 느낌에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도 쉼 없이 쏟아지기 때문에, 자막을 읽느라 화면을 놓치는 상황도 생깁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보면서 "이거 잡지였으면 집에 가져가서 천천히 읽을 텐데"라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에 다 소화하기보다 두 번, 세 번 봐야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 최고작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조금 젓겠습니다. 에피소드 간 완성도의 균일함이 아쉽고, 잡지에 대한 향수에 집중한 나머지 각 이야기가 가진 가능성이 다 펼쳐지지 못한 느낌이 있습니다. 68혁명 챕터에서 페미니즘이나 반기독교 정서 같은 핵심 측면이 표면적으로만 처리된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점 만점에 7점은 충분히 드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에 대해 "모든 고통과 진지한 이슈를 문화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장에서 나오면서 그 생각보다 먼저 "다음 작품은 뭐지?"가 떠올랐습니다. 그게 감독에게 가장 좋은 반응 아닐까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재밌게 봤다면 이 영화도 분명 볼 만합니다. 단, 뭔가 화끈하게 터지는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잡지를 읽듯이, 여유롭게 음미할 준비를 하고 가세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w8Zlruo_Xo&list=PLzMlWTOO8JND1pjgph7yiCPtgUdJ9EOOi&index=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