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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편견, 빛과그림자, 이선균)

주.만.지 2026. 7. 18. 17:17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제목도 촌스럽고, 설경구·이선균 두 배우가 특별히 제 취향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넷플릭스 홈 화면에 떠 있길래 별생각 없이 틀었는데, 영화 중반쯤에야 "어, 이거 김대중 이야기잖아?" 하고 등을 꼿꼿이 세웠습니다. 제목과 포스터로 편견을 쌓는 게 얼마나 손해인지, 이 영화 하나로 다시 배운 셈입니다.

    편견 때문에 놓칠 뻔한 영화의 배경

    제가 감상 후 감독을 검색해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불한당>, <킹메이커>, <길복순>인데, 제목만 보면 죄다 제 취향이 아닌 것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보면 꽤 좋은 감독입니다. 제목으로 편견을 가지면 안 되겠다고 진심으로 반성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감독은 좋은 작품을 낼 때마다 본인이 구설수를 만들어서 흥행을 망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참 아깝습니다.

    <킹메이커>는 1960~70년대 대한민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실제 인물 이름을 쓰지 못하는 한국 영화의 특수한 현실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Based on a true story'라는 짧은 문장 뒤에 실명을 당당히 씁니다. 반면 한국 영화는 "이 영화의 지명·인물·사건은 전부 허구입니다"라는 긴 문장으로 시작하며 이름을 전부 바꿔야 하죠. 조선시대 인물마저 후손 민원으로 소송에 걸리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그 결과 김대중은 '김운범', 박정희는 '박지수', 김영삼은 '김형오'가 되었습니다. 실제 인물인 유진산, 이철승, 엄창록(서창대의 모델)도 모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픽션화(fictionalization), 즉 실재한 역사적 사건을 허구의 틀 안에 담는 기법이 작동합니다. 픽션화란 실제 인물과 사건의 핵심 구조는 유지하되, 이름·세부 사실을 변형해 법적 책임을 피하는 창작 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이름이 바뀌는 순간 이야기의 무게, 즉 책임감이 함께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 김운범 = 김대중 (1967년 목포 선거, 40대 기수론, 영산강 연설 등 실제 행보 기반)
    • 서창대 = 엄창록 (이북 출신, 약방 운영, 1971년 대선 전 중앙정보부 접촉 후 실종)
    • 박지수 = 박정희 / 김형오 = 김영삼 (누가 봐도 명백하지만 실명 사용 불가)
    요약: 제목 편견 탓에 놓칠 뻔한 수작이었으며, 한국 영화 특유의 픽션화 구조가 이 영화에도 적용되어 실명 대신 가명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깔려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로 읽는 영화의 핵심

    일반적으로 정치 영화라 하면 대사와 논리로 승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건 시각 언어였습니다. 변성현 감독은 빛과 그림자라는 단순한 도구 하나로 두 주인공의 관계 전체를 설명합니다. 마치 뮤직비디오 감독이 쓸 법한 세밀한 조명 설계가 드라마 영화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밤늦게 운범과 창대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운범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순간 그의 몸이 빛을 가리면서 창대 쪽에만 깊은 그림자가 생깁니다. 빛의 세계에 사는 사람과 그림자의 세계에 사는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아낸 장면이었죠. 그러다 차량이 지나가는 순간 두 사람을 동시에 스치는 빛이 잠깐 비추는데, 이 찰나가 둘의 관계가 얼마나 짧게만 빛날 수 있는지를 암시합니다. 저는 이 장면 하나에서 이 영화의 격이 결정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지 전달 방식도 주목할 만합니다. 영화는 목적론적 윤리관과 결과주의적 수단론의 충돌을 다룹니다. 목적론적 윤리관이란 행위의 옳고 그름을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의 원칙으로 판단하는 입장인데, 운범이 바로 이 칸트적 인간입니다. 반면 창대는 "이기는 쪽이 정의"라는 결과주의 논리를 몸으로 실천합니다. 창대가 이 실장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는 장면, 그 불쾌함과 충격이 동시에 오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창대가 결국 "제가 선생님을 당선시킨 겁니다"라고 선을 넘는 순간, 저도 관객석에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게 아니니까요.

    연출 중 또 하나 탁월했던 건 노골적인 타이밍 연출입니다. 창대가 처음 운범을 찾아와 "아 전엔—"하고 입을 떼는 순간 화면에 '킹메이커' 타이틀이 뜨는 장면, 그리고 아들이 "나쁜 놈들이 누군데?"라고 묻자마자 박 대통령과 측근들이 등장하는 장면 전환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다큐멘터리 자료 화면처럼 연출된 장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네거티브 캠페인(negative campaign), 즉 상대 후보의 약점을 공격하는 선거 전략을 다루는 장면들은 그 리듬감이 유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1967년 목포 선거에서 있었던 물건 라벨 교체 계략 같은 에피소드는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했기에 더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조우진의 이 실장 연기는 따로 언급해야 합니다. 미소를 지으면서 살기가 느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그 음험함이 직접 전달된다는 느낌, 저는 이 영화에서 조우진 덕분에 가장 많이 긴장했습니다. 반면 이선균의 서창대는 욕을 하면 이상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연기였고, 그 감정의 기복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연기를 보면서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다시 그리워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남겨두고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버리다니,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합니다.

    요약: 빛과 그림자라는 시각 언어로 두 인물의 본질을 설명하는 연출이 탁월하며, 목적론적 윤리관과 결과주의의 충돌이 이 영화의 진짜 핵심입니다.

    이선균이 남긴 것, 그리고 이 영화의 한계

    설경구의 김운범은 솔직히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실존 인물 연기는 닮은꼴을 찾거나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택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설경구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김대중과 외모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국회의원 시절·대통령 후보 시절의 김대중이 겹쳐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찰나가 꽤 여러 번 왔는데, 그때마다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나는 저 영산강에 대해'로 시작하는 연설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는 실제 명연설을 재현한 것으로, 이 부분의 재현 완성도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다만 영화에는 명확한 한계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두 가지가 특히 아쉬웠습니다. 첫째, 후반부의 템포가 눈에 띄게 느슨해집니다. 초반의 선거 전략 장면들이 가졌던 긴장감이 1971년 대선 이후 급격히 빠져나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장면까지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둘째, 박지수(박정희) 캐릭터가 너무 기호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기호화란 인물이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단순히 '박정희스러운 것들의 집합'으로만 그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선글라스, 말투, 행동 패턴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개성이 사라졌습니다. 이 실장을 연출하는 데 쏟은 노력의 절반만 박지수 캐릭터에게 투자했다면 영화의 깊이가 달라졌을 겁니다.

    그리고 실명 미사용 문제는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 영화 내부에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가 납득되는 이유는 관객이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유진산, 이철승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지식이 없다면 김운범이 왜 저토록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졌는지, 왜 이토록 뚜렷한 목표를 지녔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지역감정의 정치적 활용이라는 지역주의 프레이밍(regional framing), 즉 유권자를 지역으로 갈라쳐 상대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전략이 실제 1971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역사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뤄지는 주제입니다(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역사). 영화는 그 구체적 맥락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 훨씬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제가 정치 성향도 없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정치색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봤는데,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건 정치 영화라기보다 사람 이야기다"였습니다. 창대와 운범이 나누는 달걀 훔치는 이웃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다음 날 달걀을 들고 이웃집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겠다는 운범의 답, 그리고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서 묻겠다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창대의 영리함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법인데, 그게 어쩌면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요약: 설경구·이선균의 연기는 충분히 훌륭하지만 후반부 템포 저하와 박지수 캐릭터의 기호화, 실명 미사용으로 인한 아이러니는 영화의 명확한 한계로 남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영화관에서 봤어도 아깝지 않았을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변성현 감독은 좋은 감독인데 매번 영화 외적인 이유로 발목이 잡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선균이 이 정도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였다는 걸,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볼 때마다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제목 보고 지나쳤던 분이 있다면, 한 번 시간 내서 보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중간에 등 펴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ZTbRxJPrSU&list=PLzMlWTOO8JND1pjgph7yiCPtgUdJ9EOOi&index=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