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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사제들, 사바하를 재밌게 본 저로서는 파묘도 당연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극장 나오면서 든 감정이 마냥 만족은 아니었습니다. 좋았습니다. 분명히. 그런데 뭔가 하나 걸리는 게 있었죠. 그 걸리는 감각이 뭔지를 곱씹다가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장재현 감독과 한국 오컬트 영화의 맥락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공포·미스터리·오컬트 장르는 생각보다 제대로 된 작품이 드뭅니다. B급 영화나 일본 특촬물까지 뒤지다 보면 퀄리티 있는 작품의 희소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한국 공포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저예산이면서 어딘가 본 듯한 모작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장재현 감독은 말 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검은사제들은 한국에서 엑소시즘(exorcism), 즉 사제나 종교인이 의식을 통해 악령을 몰아내는 퇴마 의식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시도였고, 사바하에서는 그 연출 방식이 독자적인 영역에 이르렀다고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오컬트 영화는 장르의 완성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장재현 감독만큼은 예외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파묘는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풍수지리, 무당, 장의사가 한 팀을 이루는 설정부터가 우리나라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지리 선생님이 수업 도중 갑자기 필이 꽂히면 풍수지리 얘기를 곁들이곤 했는데, 그때 귀동냥한 지식이 이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 살아났습니다. 사찰에 갈 때 조금만 공부하고 가면 구석구석이 다 재밌어지듯, 이런 소재는 배경지식이 있을수록 영화의 맛이 달라집니다.
특히 파묘 장면에서 상덕이 동전을 던지는 장면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실제 파묘(破墓), 즉 이미 쓴 묘를 다시 파헤치는 의식에서는 원래 10원짜리 동전을 산신에게 자릿세로 던진다고 합니다(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그런데 영화에서는 100원짜리를 던집니다. 이순신 장군 얼굴이 새겨진 그 동전. 감독이 그걸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꽤 의도적인 복선이라고 봅니다.
- 검은사제들 → 한국형 엑소시즘의 첫 본격 시도
- 사바하 → 장재현 특유의 미스터리 오컬트 문법이 완성된 작품
- 파묘 → 풍수지리·무당·장의사를 결합한 가장 대중 친화적인 오컬트 영화
전반부의 오컬트 연출과 후반부의 장르 전환
영화가 시작하고 한 시간, 저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LA 한인 부잣집의 3대 병마, 태백산맥 골짜기로 들어가는 차량, 악지 중의 악지에 자리 잡은 묘. 이 모든 장면이 밀도 있게 이어지면서 오컬트 영화 특유의 찝찝한 무서움이 충분히 살아 있었습니다. 1.85대 1 비율의 비스타비전(Vista Vision) 화면비, 즉 일반 시네마스코프보다 세로가 긴 화면 비율을 활용해 인물을 배경 안에 작게 눌러놓는 구도가 압도감을 더했습니다.
귀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손자에게 빙의한 악귀가 대동아공영권을 떠들기 시작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친일파 후손 부잣집이라는 설정, 독립운동가 이름을 쓰는 네 주인공, 번호판에 박힌 0301·0815·1945 같은 숫자. 영화의 역사적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꽤 명확합니다. 묘바람(墓風), 즉 잘못 건드린 무덤에서 풀려난 귀신의 기운이 산 자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설정이 이 역사적 맥락과 맞물리면서 전반부는 탄탄하게 굴러갑니다.
문제는 중반 이후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크리처물로의 장르 전환이 영화의 스케일을 키운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오히려 긴장감이 확 풀리는 걸 느꼈습니다. 오니(鬼), 즉 일본 민간 신앙에서 내려오는 귀신이자 괴력의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미스터리 오컬트에서 본격 크리처물로 방향을 틉니다. 여기서 크리처물이란 거대하거나 강력한 괴물이 실체를 드러내며 주인공과 맞서는 장르를 말합니다.
물리적 실체가 생기는 순간, 공포는 옅어집니다. 저도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 즉 형체도 출처도 모르는 무언가가 사람을 해친다는 설정이 주는 두려움과, 눈앞에 실체가 보이는 거대한 괴물이 주는 위협감은 질이 다릅니다. 전반부에서 힘을 다 써버린 탓인지 후반부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극장에서 나오면서 들린 어르신들 반응도 "말뚝은 좀 뜬금없네"라는 말이 꽤 있었으니까요.
배우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합니다. 김고은의 대살굿(大殺굿), 즉 강한 악기운을 끊어내기 위해 치르는 강도 높은 무속 의식 장면은 아마 오래 회자될 장면입니다. 최민식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나머지 세 배우를 받쳐주는 기둥 역할을 했고, 이도현은 오니에게 빙의당하는 장면에서 자칫 우스워질 수 있는 표현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기준 파묘 최종 누적 관객 수 1,100만 명 돌파).
- 전반부: 묘바람·악귀·친일파 비밀 —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의 완성도 높은 전개
- 중반부: 친일파 관 아래 숨겨진 또 하나의 관 — 이야기의 진짜 판이 깔리는 구간
- 후반부: 오니의 등장과 크리처물로의 장르 전환 — 긴장감 이완과 호불호 분기점
후반부 아쉬움과 파묘가 남기는 것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화림의 싸움 방식이 너무 소극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초반에 쫄았다고 자책하며 봉길을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 뒤, 오니와의 2차 대면에서 화림이 가진 모든 무속적 능력을 쏟아내는 장면을 기대했습니다. 무당답게 전면으로 나서는 그림이요. 그런데 실제 전개는 그 기대와 다소 달랐고, 그 대목의 묘사가 모호하게 처리된 것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이도현이 연기한 봉길도 MZ 무당다운 현대적 방법론이 한 번쯤 등장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그 역시 기대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파묘가 던지는 질문은 무겁습니다. 영화 속 말뚝에 대해 "주술적 의미는 없다, 측량용이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저도 그 설명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측량으로 무엇을 했느냐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조선총독부를 지어 경복궁 앞을 막고, 이 국토를 자신들 것으로 재편하기 위해 쓴 측량이었으니, 말뚝에 담긴 의도 자체가 어떤 주술보다 실질적이고 잔인한 폭력이었습니다.
그 무게감은 영화가 선택한 역사적 층위와 맞닿아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부산진을 지키다 800명의 병력으로 수천의 왜군에 맞서 전사한 정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어주긴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결사 항전한 동래부사 송상현.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그 결연한 태도가 영화 결말의 상덕과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알고 보면 영화의 후반부 아쉬움이 좀 무뎌지기도 합니다.
최근 제가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들, 안시성·천박사·외계인 1부·서울의봄을 놓고 비교해보면 파묘는 서울의봄 다음으로 몰입감이 높았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인 검은사제들과 사바하의 계보를 이어가기에 충분한 작품이고, 감독이 이 장르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다루는지는 여전히 느껴집니다. 사바하가 더 좋은 영화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파묘가 선택한 대중 친화적 방향성은 그 자체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정리하면, 파묘는 이 장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입니다. 전반부의 완성도만으로도 입장료는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단, 후반부의 장르 전환이 호불호를 가를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알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검은사제들과 사바하를 먼저 보고 가면 감독의 문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더해집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파묘할 것들이 많은 모양이고, 그 이야기를 꺼내줄 사람이 필요한 시대에 장재현 감독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8XIE-DiaqM&list=PLzMlWTOO8JND1pjgph7yiCPtgUdJ9EOOi&index=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