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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는 전체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유머러스한 작품입니다. 저는 시사회 소식도 없던 시점에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웃겼는데 처연했고, 가벼웠는데 무거웠습니다. 그 이상한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블랙코미디라는 말이 이렇게 딱 맞는 영화가 또 있을까요
영화를 보기 전에 솔직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헤어질 결심>이 어마어마한 완성도로 흥행에는 고전했고, 이번엔 박찬욱 감독이 얼마나 대중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지 가늠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까, 이건 타협이 아니라 박찬욱식 해석으로 대중성을 풀어낸 거였습니다. 감 떨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 결로 설계한 것이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적 핵심은 블랙코미디(black comedy)입니다. 여기서 블랙코미디란 비극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불편한 소재를 웃음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단순히 어두운 개그가 아니라, 웃음이 터지는 순간 동시에 불쾌함이나 슬픔이 밀려오는 이중 구조가 핵심입니다. 이 영화에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흘러나오는 장면이나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를 끌어다 쓰는 대목이 딱 그렇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극장에서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동시에 뭔가 씁쓸해지는 감각을 느꼈는데, 이게 의도된 충돌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웃음 코드가 어거지라는 평도 있던데, 저는 정반대로 느꼈습니다. 오히려 고의적으로 세련되지 않게 만든 유머, 인간의 너절함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원초적인 웃음이었습니다. 그 계산된 촌스러움이 오히려 더 시원하게 웃기게 만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드라이한 유머와 연극적 연출이 이상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지점이었습니다.
앙상블 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 세 사람이 한 공간에서 치고받는 장면은 박찬욱 전체 필모에서도 손꼽힐 만한 연기 향연이었습니다. 이성민과 염혜란의 케미는 그야말로 대환장의 콜라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이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훔쳐갔습니다. 박희순은 딱히 기억에 남는 배우가 아니었는데, 이 영화로 다시 보게 됐습니다. 반면 손예진은 전반부에서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맨 마지막에 이병헌을 안아주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캐릭터가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 조용필 '고추잠자리' 장면: 박찬욱 전체 필모 중 가장 폭발적인 웃음 포인트, 동시에 가장 처연한 순간
- 이성민·염혜란 커플: 영화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앙상블, 관객의 마음을 가장 먼저 빼앗아 가는 콤비
- 이병헌의 코미디 연기: 깊은 감정과 복잡한 내면을 웃음 속에 입체적으로 담아낸 박찬욱과의 최고 조합
노동드라마로서의 이 영화,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영화의 표층은 코미디지만, 그 아래에는 단단한 노동드라마가 깔려 있습니다. 원작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로, 국내에서도 20여 년 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영화는 원작의 뼈대를 가져오되, 제지업계 구조조정이라는 한국적 맥락 속에 재배치합니다. 핵심 카피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가 이 영화의 전제를 그대로 압축합니다.
이 전제 자체가 이미 부조리(absurdity)입니다. 여기서 부조리란 논리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상황, 즉 어떤 선택을 해도 비극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주인공 만수는 자신이 들어가야 할 자리가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고 고정 불변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 자체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함정입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반드시 잃는 구조로, 이 영화에서는 만수의 왜곡된 세계관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자리를 늘리거나, 직종을 바꾸거나, 사회적으로 재배치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만수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범행의 구조가 끔찍하게 비틀려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희생자인 법모, 시조는 사실 만수가 탐내는 자리인 '문재'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자리는 세 번째 희생자인 선출이 현재 다니는 회사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만수는 아직 없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먼저 관계없는 경쟁자를 둘 죽이고, 그다음에서야 자리를 가진 사람을 제거하는 순서로 움직입니다. 이 범죄는 처음부터 부조리에 토대하고 있다는 것, 저도 영화를 보면서 그 구조가 명확하게 보이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런 구조는 <기생충>과 자주 비교됩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해외 언론 다수가 이 두 작품을 나란히 놓았는데, 저는 그 비교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영화 모두 잘못된 전제 위에서 경쟁과 범죄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진짜 적이 누군지는 끝까지 흐릿하게 남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어쩔 수가 없다>에서 고용주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싸우는 쪽은 언제나 해고된 노동자들끼리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표면적으로는 해피엔딩처럼 보입니다. 만수는 완전범죄에 성공하고, 집을 지키고, 취업에도 성공합니다. 그런데 정말 해피엔딩일까요? 저는 마지막 장면의 '소등 시스템'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소등 시스템이란 영화 속 AI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장치입니다. 만수가 첫 출근을 마치는 그 순간, 공장의 불이 하나씩 꺼지면서 그도 결국 어둠 속에 잠깁니다. 박찬욱 감독이 시각 언어로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가 그토록 사력을 다해 되찾은 자리도, 몇 년 안에 다시 사라질 것이라고.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범죄를 의심하고, 아내는 남편의 비밀을 알 것 같고, 9년간 지켜온 금주 약속은 이미 깨진 상태입니다. 이 가족이 오프닝의 그 가족과 외형은 같지만 내부는 완전히 다른 상태라는 걸, 주인공만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제 면에서 더 비장하게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코믹 요소와 비극적 결말의 대비가 더 극명했다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선택은 흥행에는 불리했을 테고, 박찬욱 감독이 이번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 영화를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봤는데, 박찬욱 영화를 온 가족이 같이 보는 경험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좋았습니다.
- 제로섬 게임의 함정: 만수의 세계관 자체가 이 영화의 비극을 만드는 원인, 자리는 만들 수 있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그 가능성을 닫아버림
- 부조리한 범죄 구조: 죽일 필요 없는 두 사람을 먼저 죽이고, 그다음에야 자리를 만드는 순서—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범행
- 소등 시스템의 암시: AI 자동화가 그 자리마저 곧 없앨 것임을 마지막 장면이 시각적으로 선언
극장을 나오면서 계속 맴돌았던 문장이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인가, 진심인가. 만수는 끝까지 그렇게 믿었고, 시스템도 그렇게 굴러갔고, 아버지도 그 말을 붙들고 살다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요? 영화는 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깔끔하게 닫지 않습니다. 저는 그 열린 결말이 불편하면서도 정직하다고 느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과 <박쥐>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이 세 편을 이어서 보면, 감독이 평생 천착해온 "어쩔 수 없다고 믿는 인간"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는지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