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펄프 픽션을 봤을 때,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뭔가 엄청난 걸 본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말로 설명이 안 됐거든요. 타란티노의 작품 중 저는 이 영화를 원픽으로 꼽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하나씩 뜯어보려 합니다.
맥거핀, 관객을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끈
영화 초반, 건달 빈센트와 줄스는 가방 하나를 회수하러 갑니다. 그 가방을 얻기 위해 사람까지 죽이죠. 그런데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영화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보면서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이때 타란티노가 사용한 기법이 바로 맥거핀(MacGuffin)입니다. 여기서 맥거핀이란 이야기를 추진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정체나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 장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입니다.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에서 주인공 마리온이 훔친 4만 달러가 대표적인 예인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돈은 잊히고 살인마 베이츠가 이야기의 전면에 나섭니다. 맥거핀이란 원래 이렇게 쓰입니다.
펄프 픽션의 가방도 정확히 그 역할을 합니다. 가방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관객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게 됩니다. 부부 강도 펌프킨과 허니버니의 소란을 지켜보고, 복서 부치가 변태 사이코패스와 뒹구는 걸 끝까지 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방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죠. 저도 처음 볼 때 그랬습니다. 마지막에 가방이 다시 등장했을 때 "아, 맞다 가방"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맥거핀이 탁월한 이유는 단순히 관객을 속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짜 이야기를 보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타란티노는 가방이라는 장치 하나로, 네 개의 에피소드를 억지 없이 이어붙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선형 서사, 잡지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
펄프 픽션(Pulp Fiction)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영화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펄프 픽션이란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저가 잡지, 즉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싸구려 출판물을 가리킵니다. 타란티노는 이 잡지의 형식을 그대로 영화에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잡지와 영화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일반 영화는 기승전결이라는 선형 서사(Linear Narrative) 구조를 따릅니다. 여기서 선형 서사란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방식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영화가 이 구조를 따릅니다. 반면 잡지는 여러 단편이 순서 없이 병렬로 존재하죠.
타란티노는 과감하게 선형 서사를 포기했습니다. 네 가지 에피소드를 시간 순서 없이 뒤섞어버렸고, 심지어 각 에피소드를 절반으로 나눠 영화 앞뒤로 배치했습니다. 이 구조를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라고 합니다. 비선형 서사란 사건의 인과관계나 시간 순서를 해체하여, 여러 시점이나 순서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전체 그림이 맞춰집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는 편집의 결과물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어떤 장면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무게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펄프 픽션이 그걸 몸으로 가르쳐준 영화였습니다.
비선형 서사는 호불호가 갈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타란티노 팬들 중에서도 이 영화가 너무 어렵다거나 뭔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킬빌, 바스터즈, 장고 같은 후기작들이 훨씬 친절하고 대중적인 구성을 취하는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진입 장벽이 있는 편입니다.
우연성, 이 영화가 설정으로 삼은 것
펄프 픽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부치가 시계를 찾고 돌아가다 보스 마르셀러스와 우연히 마주치는 시퀀스를 고릅니다. 영화에서 두 인물이 같은 횡단보도에서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우연적인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납득이 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타란티노가 우연성(Contingency)을 이 영화의 세계관 자체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연성이란 인과관계 없이 예상 밖의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펄프 픽션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 속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우연은 예외가 아니라 이 세계의 법칙입니다.
실제로 영화 전반에 걸쳐 우연성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적지 않습니다.
- 빈센트가 우마 서먼의 헤로인 과다복용을 처리하는 방식
- 줄스와 빈센트가 총을 맞고도 살아남는 장면
- 부치가 빈센트를 사살하는 타이밍
- 마르셀러스와 부치, 그리고 변태 사이코패스가 얽히는 지하 시퀀스
특히 부치와 마르셀러스가 지하실에서 공동의 적을 만나 함께 싸우게 되는 전개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장면입니다. 보스와 복서가 같은 편이 되는 이 기묘한 상황, 이게 가능한 건 이 영화가 우연을 하나의 이야기 문법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셀러스의 표정과 보디랭귀지가 그 장면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상황을 짚어내는지, 제가 직접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각본도 각본이지만 배우의 신체 연기가 없었다면 절반의 설득력도 없었을 겁니다.
존 트라볼타와 사무엘 L 잭슨, 이 두 사람의 호흡
펄프 픽션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존 트라볼타와 사무엘 L 잭슨의 조합입니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Chemistry)는 단순한 연기 호흡 이상입니다. 여기서 케미스트리란 두 배우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과 상호작용을 가리키며, 이것이 살아있을 때 장면 자체가 살아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요네즈로 감자튀김을 찍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트라볼타가 유럽에서는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사무엘 잭슨이 "우엑"이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저도 그때 똑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문득 그 장면이 생각나서 마요네즈를 달라고 했고, 찍어 먹어 봤더니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감자튀김엔 케찹 대신 마요네즈를 씁니다.
이게 농담 같지만 사실 이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일상 대화가 영화가 끝나고도 기억에 남습니다. 두 배우의 호흡이 그 대화를 살아있게 만든 덕분입니다.
마지막 장면, 줄스가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에스겔서 25장 17절을 다시 한번 읽어주는 그 시퀀스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목숨값을 내고 나서야 그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줄스의 표정, 그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대사의 내러티브 기능(Narrative Function), 즉 이야기 안에서 대사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캐릭터의 내면 변화를 보여주는 역할을 이 장면만큼 잘 보여주는 예를 저는 잘 모릅니다.
영화 연구자들도 펄프 픽션의 대본 구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실제로 미국 작가 조합(WGA)은 이 영화 각본을 역대 미국 영화 각본 중 상위권으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출처: Writers Guild of America). 또한 영국영화연구소(BFI)는 펄프 픽션을 20세기 영화사의 분기점으로 분류하며 비선형 서사 방식이 이후 영화 언어에 미친 영향을 강조했습니다(출처: British Film Institute).
펄프 픽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분명 낯설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뒤죽박죽이고, 말이 많고, 결말도 깔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번 보면 또 다릅니다. 맥거핀의 위치가 보이고,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직 펄프 픽션을 한 번만 보신 분이라면 한 번 더 보시길 권합니다. 두 번째 관람이 진짜 감상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