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 영화 보러 갈 때 기대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광기가 넘치는, 카드 패처럼 판을 한방에 뒤집는 그 조커 말입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건 내가 알던 조커가 아닌데"였고, 그러면서도 영화관을 나오는 발걸음이 꽤 무거웠습니다. 좋은 의미로요.
망상과 현실 사이, 아서 플렉의 심리 구조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저 장면, 진짜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그냥 아서의 머릿속 이야기일까.
영화는 처음부터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망상(delusion) 상태에 놓인 사람으로 설정합니다. 여기서 망상이란 현실과 괴리된 강한 믿음이 지속되는 상태로, 정신의학 용어로는 정신증(psychosis)의 주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아서는 자신이 유명 코미디언의 아들이라고 믿고, 이웃 여성과 연인 관계라고 믿으며, 그 믿음들이 박살나는 과정이 영화의 실질적인 서사 축을 이룹니다.
재미있는 건, 영화가 이 망상들을 그냥 병적 증상으로만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서에게 망상은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입니다. 방어기제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 전략을 의미합니다. 학대받고 방치된 어린 시절, 아버지 없이 자란 결핍, 이 모든 것들을 버텨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상상 속의 아버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웨인이라는 실존 인물에 아버지를 투영하고, 나중엔 TV 쇼 진행자 머레이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는 식으로요.
제가 이 부분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이런 감정 알지 않나요. 철저히 사회 속에 나로 살면서, 진짜 감정은 꽁꽁 숨기고 버텨온 경험. 아서의 경우는 극단적이지만 그 감정의 출발점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절망, 분노, 존재감 없음.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들은 꽤 원초적인 영역입니다.
실제로 학대나 방치 경험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연구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아동기 역경 지수(ACE score)가 높을수록 성인기 정신질환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아서 플렉의 비극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방치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 포인트를 꼽자면 단연 클로즈업 신들입니다. 화면의 90%를 덮을 만큼 얼굴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방식, 어지간한 감독이 배우에 대한 신뢰 없이는 시도하기 어려운 구성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받쳐주니까 가능한 선택이었고, 이 영화는 사실상 그의 연기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유독 신경 쓰였던 건 그의 왼쪽 어깨 구조가 좀 이상하게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이건 배역을 위한 체형 변화 때문인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사회 비판으로 읽는 조커, 그리고 아쉬운 점
그렇다면 이 영화가 단순히 한 인물의 비극을 다룬 작품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영화 시작부터 고담시의 거리는 쓰레기로 가득합니다. 청소 노동자 파업으로 쓰레기가 방치된 도시. 이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서 플렉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시각적 은유(visual metaphor)입니다. 은유란 표현하려는 대상과 유사한 속성의 다른 이미지를 겹쳐 의미를 전달하는 수사 기법인데, 영화 전반에 이 방식이 촘촘하게 깔려 있습니다.
아서가 해고된 직후 쓰레기통들 사이에 나동그라지는 장면, 냉장고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문을 닫는 장면 모두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냉장고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냉동 보관한다는 의미로도 읽히고, 망상 속에 자신을 가두는 행위의 시각화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들은 감독 토드 필립스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들입니다.
사회 비판의 맥락에서 이 영화를 볼 때 핵심은 아서 혼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가 지하철에서 세 명을 죽이고 나자, 도시 전체에서 조커 가면을 쓴 군중이 들고일어납니다. 이건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 현상, 즉 한 개인의 일탈 행동이 유사한 좌절을 가진 집단 사이에서 모방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조커 탄생의 사회적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정 내 학대와 방임 (양부에 의한 신체적 학대, 어머니의 방관)
- 복지 예산 삭감으로 인한 의료 접근성 차단 (정신과 상담 및 약물 치료 중단)
- 공동체의 무관심과 냉대 (버스 안 승객, 이웃, 직장 동료)
- 미디어와 상류층의 약자 조롱 (머레이 쇼, 토마스 웨인의 연설)
이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달랐다면 조커가 탄생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조커의 행위에 동의할 수 없지만, 동정의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악을 만들어낸 건 사회이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이 영화에서 제가 아쉬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아서가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이 지하철 살인 이후부터 너무 급격하게 전환된다는 점입니다. 관객이 그 변화를 충분히 내면화하기 전에 사건들이 연달아 펼쳐지면서 "왜 갑자기?"라는 의문이 생기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또 빈부 갈등에 기반해 폭도들이 조커에게 열광하는 과정도 좀 더 설득력 있게 쌓여야 했는데, 그 당위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정신질환과 폭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실제로 정신질환자 대다수는 타인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이 영화가 자칫 정신질환과 폭력을 연결 짓는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이 점은 관람 전후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지점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한 명의 조커 탄생기라기보다, 조커를 탄생시킨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상, 연기, 음악 어느 것 하나 흠잡기 어려운 수준이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겠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조커 2편을 보기 전에 1편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디테일들을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57UWMT3vMc&list=PLUpgTv3bu9rE2IETk8bf-Yb64eldPbhl2&index=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