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이클은 북미에서 혹독한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초중반까지 보면서 솔직히 "왜 까이지?" 싶었습니다. 그 의문이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단순히 나쁜 영화라고 말하기엔 억울한 구석이 분명히 있는 작품입니다.
자파리 잭슨의 재현
이 영화에서 가장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 있다면 자파리 잭슨의 퍼포먼스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건데, 롱숏으로 전신이 잡히는 장면에서도 마이클 잭슨과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얼굴 닮음보다 더 놀라운 건 목소리였고, 그 특유의 애드립과 발성까지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데는 유전적 배경이 있습니다. 자파리 잭슨은 저메인 잭슨의 아들인데, 저메인은 잭슨 파이브(Jackson 5)에서 마이클과 함께 공동 리드 보컬을 맡았던 형입니다. 여기서 잭슨 파이브란 1960년대 말 모타운 레코드(Motown Records) 소속으로 데뷔한 잭슨 형제 그룹을 가리킵니다. 삼촌과 25%의 DNA를 공유하는 조카가 그 역할을 맡았으니, 단순한 캐스팅 묘수가 아니라 유전이 실제로 개입한 셈입니다.
현직 아이돌 입장에서 봤을 때, 노래와 춤에 특화된 연기를 소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하며 본 분들이라면 이 재현의 수준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겁니다. 모타운 25주년 기념 무대처럼 이미 전설이 된 공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압박은 상상 이상이었을 테니까요.
위인전처럼 읽히는 서사 구조
문제는 영화의 서사 구조입니다. 총괄 프로듀서 크레딧에 잭슨 가족 이름이 다수 올라가는 영화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제가 직접 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관리된 서사'였습니다.
전기 영화(Biopic)는 실존 인물의 삶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Biopic이란 'Biographical Picture'의 줄임말로, 단순한 다큐멘터리와 달리 극적 긴장감과 인물의 내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극영화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Biopic보다는 헌정 영상에 가깝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아버지 조 잭슨만이 유일한 갈등 축으로 기능하고, 형제들 간의 복잡한 역학관계나 저메인과 마이클 사이에 존재했을 라이벌 구도 같은 내밀한 이야기는 거의 생략됐습니다. 저메인이 모타운 사장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의 딸과 결혼하면서 밴드를 떠나지 못했던 사연, CBS로 이적한 진짜 이유가 작사·작곡 자율성 문제였다는 사실 같은 맥락들이 빠져 있으니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적 입체감 부족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것이 의도된 절충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아직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사건들도 있으니 특정 사건을 깊게 파고드는 선택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겁니다.
공연 장면이 너무 많다는 비판에 대해
북미 평단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저도 솔직히 동의하는 편입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공연 시퀀스가 반복되면서 "연기를 보여주려는 건지, 무대를 보여주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거든요.
사실 예전 마이클 잭슨 실제 공연 영상을 틀어주는 게 훨씬 더 강렬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 영화를 만들면서 그 많은 명곡들과 무대를 생략할 수 있겠냐는 거죠. 전체 영화의 상업적 전제 자체가 '그 무대를 다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뮤직비디오(Music Video)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이전, 마이클 잭슨이 공연과 비주얼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을 결합해 대중음악의 문법을 바꿨다는 점은 음악 산업에서 공식화된 평가입니다. 여기서 비주얼 스토리텔링이란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에서 보고 경험하는 콘텐츠로 전환한 접근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K팝의 퍼포먼스 문법이 그에게서 시작됐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출처: Billboard).
영화가 공연에 과도하게 기댄다는 비판은 유효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덜어내면 남는 서사가 충분히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영화 마이클의 아쉬운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버지와의 갈등 외 내면 묘사가 극히 제한적
- 잭슨 형제 간의 복잡한 관계가 거의 생략됨
- 공연 재현에 집중하다 보니 극적 긴장감이 후반으로 갈수록 낮아짐
- CBS 이적 등 음악적 자립 과정의 맥락이 부족함
그럼에도 마이클 잭슨 입문작으로서의 가치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의미하냐고 한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마이클 잭슨을 "알지만 잘 모르는" 세대, 즉 '빌리 진'과 문워크 정도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입문 콘텐츠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모타운 25주년(Motown 25th Anniversary) 무대의 탄생 비화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날 밤 혼자 부엌에서 안무를 짜고, 아이들에게 배운 문워크를 그 자리에서 조합해 다음 날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은 마이클 잭슨의 창작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음악적 즉흥성(Musical Improvisation)이란 사전에 정해진 구성 없이 그 순간의 감각과 판단으로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그게 세기의 공연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또한 영화는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마이클이 진정한 솔로 아티스트로 독립하는 시점까지를 1부로 잘라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마이클'입니다. 이 구조 자체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때 더 깊은 이야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팝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스릴러(Thriller) 앨범은 단일 앨범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전 세계 판매량이 약 6,600만 장에 달합니다(출처: Guinness World Records). 이 영화는 그 유산을 경건하게 다루려 했고, 그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는 게 한계이기도 하고요.
결국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기대치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 마이클 잭슨의 복잡한 내면을 기대하고 들어가면 실망할 수 있고, 그의 음악과 무대를 다시 경험하러 간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저는 전자를 바랐다가 후자로 타협한 관객이었고, 그래도 자파리 잭슨 덕분에 극장을 헛걸음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e4KosUzMTc&list=PLUpgTv3bu9rE2IETk8bf-Yb64eldPbhl2&inde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