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플래시백 장면인 줄 알았습니다. 딸아이와의 기억을 회상하는 구조라고 철석같이 믿고 봤다가, 엔딩 10분을 남기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게 전부 미래였다는 것. 두 번 봐야 비로소 보이는 영화가 있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영화를 꼽습니다.
사피어워프 가설이 이 영화의 핵심인 이유
일반적으로 SF 영화에서 외계인과의 소통 문제는 금방 해결되거나 그냥 건너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과정 자체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그저 "언어를 배우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의 언어학적 토대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입니다. 여기서 사피어워프 가설이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구조가 그 사람의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동사가 문장 끝에 오는 한국어 화자는 결론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고,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오는 영어 화자는 처음부터 결론을 내놓는 두괄식 사고에 익숙하다는 식입니다.
제가 이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설마 언어가 그렇게까지 사고에 영향을 미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한 뒤 시제 없이 미래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언어가 세계를 인식하는 틀 자체를 바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극단으로 밀어붙여지면 시간의 흐름 자체를 다르게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상상이 황당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아마 이 가설에 이미 설득된 것입니다.
언어학자인 루이스를 왜 주인공으로 설정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물리학자가 먼저 필요한 건 맞습니다. 외계 문명의 기술을 분석하려면 우주 전체에서 통용되는 물리 법칙을 아는 사람이 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언어학자를 함께 배치한 순간, 이 이야기의 방향은 사실상 결정된 겁니다. 전투나 침략이 아니라 소통을 다루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입니다.
플래시포워드 구조가 주는 충격
저도 처음에는 완전히 속았습니다. 딸아이와의 장면들이 계속 끼어들 때, 저는 그게 과거 회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게 전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였다는 걸 깨달았고, 바로 다시 처음부터 돌려봤습니다.
플래시포워드(flash-forward)란 현재 시점보다 미래의 장면을 먼저 보여주는 서사 기법입니다. 여기서 플래시포워드가 특별한 이유는, 이 기법이 영화라는 매체와 만났을 때 훨씬 강력한 효과를 낸다는 점입니다. 소설이라면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처럼 미래 시제를 문장에 직접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모든 장면이 기본적으로 현재입니다. 자막이나 색감 처리를 쓰지 않으면 관객은 그 장면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특성을 역이용했습니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플래시백이겠지"라고 착각하도록 유도한 뒤, 마지막에 그게 사실은 플래시포워드였다고 뒤집는 방식입니다. 이런 반전은 소설보다 영화에서 훨씬 강하게 작동합니다. 텍스트는 독자가 시제를 의식하며 읽지만, 영상은 시제를 의식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테드 창은 이 장면들을 미래 시제("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로 썼다고 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문장이었을 텐데, 끝까지 읽고 나서야 이 서술 방식이 루이스의 시간 인식 자체를 문장 구조로 구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이 영화를 단순한 SF가 아니라 언어와 서사 구조 자체를 실험하는 작품으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넌제로섬 게임으로 읽는 루이스의 선택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딸이 12살에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이스는 왜 그 선택을 했는가.
일반적으로 이 장면을 비극으로만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넌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의 논리로 읽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넌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이 얻으면 반드시 다른 쪽이 잃는 제로섬 구조와 달리, 양쪽 모두가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삶과 죽음을 제로섬으로 보면 12년 후의 상실이 12년의 삶을 지워버립니다. 하지만 넌제로섬으로 보면, 12년의 생이 상실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물리학자 이언은 그 선택에 동의하지 못하고 떠납니다. 이 대비가 저는 꽤 솔직하게 그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를 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는다는 것. 루이스의 선택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삶과 죽음을 어떤 구조로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언어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
- 시제 없는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인과론적 사고에서 목적론적 사고로 전환하는 루이스
- 미래를 알고도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운명론인지, 넌제로섬적 수용인지의 질문
- 상실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 구조
인지언어학 분야에서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며, 언어 구조가 시간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출처: MIT 언어학 연구소). 또한 SF 문학과 과학의 접점을 연구하는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자주 인용됩니다(출처: 미국언어학회 LSA).
두 번을 봐야 완전히 이해되는 영화라는 게 단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처음엔 이야기에 속고, 두 번째엔 구조를 읽고, 세 번째엔 루이스의 얼굴 표정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직 한 번만 보셨다면, 한 번 더 보시길 권합니다. 그때 비로소 이 영화가 왜 외계인 영화가 아닌지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