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주인공이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멜로 영화가 가능할까요. 저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 개봉작 파이란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공식을 완성해낸 영화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봤는데, 여전히 그 슬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파사모, 그리고 최민식 형님이 뜨던 날
일반적으로 영화 팬 동호회라고 하면 포럼에서 텍스트 몇 줄 나누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파이란 팬 모임인 파사모는 그 범주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파사모란 파이란을 사랑하는 모임의 줄임말로, 이 영화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호회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때는 정기 모임이 자주 열릴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됐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파이란을 처음 보라고 권해준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파사모에 가입해 있었는데, 어느 정모 날 최민식 본인이 직접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본인이 파사모의 존재를 평소에 알고 있었고, 직접 자리에 나와서 동호회 사람들과 술도 한잔하고 사진도 찍었다는 겁니다. 배우가 팬 모임에 직접 찾아오는 일은 지금도 흔치 않은데, 그 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파이란이라는 영화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라 특별한 결속감을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파사모 회원들에 대해 친구가 묘사한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 묘사 자체가 이 영화의 정서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순애보라는 장르가 여기서 다시 정의된다
파이란은 순애보(純愛譜) 장르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순애보란 순수한 사랑을 중심에 놓는 이야기 형식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장르는 두 인물이 만나고, 감정을 쌓고, 이별하는 구조를 따릅니다. 그런데 파이란은 그 구조를 철저히 해체합니다. 강재와 파이란은 서류 위에서만 부부였고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강재는 인천 뒷골목을 전전하는 3류 양아치입니다. 조직에서도 무시당하고, 동생뻘 조직원한테도 찍히고, 비디오 대여점 관리마저 뺏깁니다. 감옥에서 나온 이유도 미성년자에게 불법 포르노를 팔다 걸린 것이어서 체면이 설 데가 없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변화해 가는 궤적이라는 측면에서 강재는 시작부터 바닥입니다. 그 바닥에 있는 사람이 편지 한 장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파이란은 중국에서 친척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그 친척은 이미 이민을 간 뒤였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파이란은 위장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받아들이고, 강재의 이름과 서류 위에서 강백란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강원도 세탁소에서 일하며 한국어를 익히고, 읍사무소에서 신원 조회가 나왔을 때도 강재의 남편 서류 덕에 겨우 위기를 모면합니다. 파이란이 강재에게 감사한 건 그 이유였는데, 강재는 그 사실조차 모르는 채 살았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으로 이 영화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구도, 소품, 배우의 위치까지 포함하는 영화적 연출 개념입니다. 파이란에서 강재의 장면들은 어둡고 지저분한 실내를 배경으로 하는 반면, 파이란의 장면들은 눈 덮인 강원도 시골 풍경과 함께 놓입니다. 두 인물이 만나지 못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각적 대비가 둘 사이의 거리와 간절함을 스크린으로 전달합니다.
파이란이 방파제 신에서 갖는 힘을 이해하려면 이 모든 맥락이 쌓여야 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영화 보면서 처음으로 끅끅거리며 울었습니다. 그 전까지 영화 보면서 운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닌데, 그 방식이 달랐습니다. 뭔가 터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흥행 실패라는 오해와 최민식이라는 이름
파이란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건 2001년 개봉 당시 친구(2001)와 맞붙어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흥행 실패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 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필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저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흥행 성적과 작품 완성도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를 파이란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드뭅니다.
흥행 성적을 수치로 보면 당시 파이란의 서울 관객수는 약 40만 명 수준이었고, 같은 해 개봉한 친구는 818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극장 문화와 개봉 시장의 흐름이 집중형이었던 2001년에 이 차이는 너무 컸습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스크린 독과점 구조, 즉 특정 흥행작이 상영관을 대부분 점유하는 방식이 당시에도 작동하고 있었고, 파이란은 그 구조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최민식은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습니다. 필모그래피(filmography)란 특정 배우나 감독이 참여한 영화 목록 전체를 의미하는데, 최민식의 필모그래피에는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명량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목록에서 파이란을 가장 먼저 꺼내든다는 건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장백지에 관한 비하인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추운 날씨에 촬영이 워낙 힘들었던 탓에 장백지가 소속사 대표이자 삼합회 간부인 아버지에게 매일 전화해서 하소연했고, 최민식을 포함한 스태프 전체가 내내 불안에 떨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긴장감이 무색하게 두 배우 모두 이 영화에서 생애 최고의 연기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파이란이 보여준 순애보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두 주인공이 한 장면도 함께 등장하지 않는 구조
- 사랑의 감정이 직접적 대면이 아닌 편지와 사진으로만 전달됨
- 감정의 폭발이 상대방의 사망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짐
- 일방적이지만 순수한 감정이 파이란에서 강재로 전달되는 방향성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01년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에 해당하는 시기로, 상업 영화와 작가주의 영화 사이의 긴장이 가장 팽팽하던 해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파이란은 그 긴장 속에서 흥행에는 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시 불려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파이란을 꺼내봤는데, 담배가 어찌나 땡기던지 몰랐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볼 때랑 맞먹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그 슬픔이 다시 보니 조금 다른 방식으로 왔습니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영화 자체가 볼 때마다 다른 층위를 보여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파이란은 슬픔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절제라는 방식으로 감정을 쌓아 올린 끝에 한 번에 허물어뜨립니다. 인생이라는 게 뭔지 느끼고 싶을 때, 혹은 기억 속에 오래 두고 싶은 영화 한 편이 필요할 때 꺼내볼 만한 작품입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방파제 장면에서 뭔가가 올라올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