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집니다. 어디서 뭘 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게 관심인지 집착인지 헷갈릴 때쯤 영화 클로저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볼 때마다 다른 장면이 걸리는 영화인데, 이번엔 유독 댄의 태도가 눈에 밟혔습니다.
낯선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순간
영화는 런던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댄과 앨리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작은 교통사고로 이어지고, 그 다정한 순간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듭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의 도입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 클로저(Closer)는 '더 가까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헬라어 스트레인저(Stranger), 즉 '낯선 사람'이라는 대사로 문을 엽니다. 여기서 스트레인저란 단순히 모르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처음 마주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관객과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낯선 면이 드러난다는 역설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냥 불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댄이 소설가로 성공한 뒤에도 앨리스 몰래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장면, 그 순간 댄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그냥 '낯섦에 대한 끌림'인지를 영화는 끝까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관객에게 던져두는 거죠.
네 사람의 사랑, 처음부터 단추가 어긋났다
영화의 네 주인공 댄, 앨리스, 안나, 래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정의합니다. 이 차이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핵심 동력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한 연구 결과가 떠올랐습니다. 관계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착 유형(Attachment Styl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애착 유형이란 어린 시절 형성된 대인관계 패턴이 성인의 연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으로, 크게 안정형·불안형·회피형으로 나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이 틀로 보면 네 사람의 엇갈림이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 앨리스: 일방적인 헌신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받지 못합니다. 불안 애착에 가깝습니다.
- 댄: 매 순간 진심이지만 그 진심이 상대방에 따라 바뀝니다. 자기중심적 사랑의 전형입니다.
- 안나: 스스로를 벌주듯 사랑합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를 스스로 밀어냅니다.
- 래리: 타협과 소유욕으로 관계를 유지합니다.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는 현실에서도 흔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좋아할수록 "저 사람은 내가 다 알고 있어"라는 착각이 생기고, 그 착각이 무너지는 순간이 가장 가혹합니다. 영화 속 댄이 딱 그렇습니다. 래리가 댄에게 "안나와 지난 주 내내 네 얘기를 했고, 마마보이에…" 라고 지나가듯 던지는 대사가 있는데, 그 짧은 문장이 저한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아무리 진중하다 생각한 관계도, 상대방 눈에는 그냥 이야깃거리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다 보통 사람이고, 대단한 사랑 같은 건 없다는 느낌이 그 장면에서 왔습니다.
앨리스의 정체, 그리고 거짓말의 의미
영화 후반부에서 앨리스의 본명이 제인 존스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앨리스라는 이름은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추모공원에서 발견한 타일에 새겨진 이름이었습니다. 화재 속에서 세 아이를 구하고 숨진 의인, 앨리스 아이레스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여기서 서사적 아이러니(Narrative Irony)라는 장치가 작동합니다. 서사적 아이러니란 관객이 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거나, 인물의 행동이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때 발생하는 극적 효과를 말합니다. 제인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숭고한 이름을 빌렸지만, 그 이름이 오히려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앨리스가 스트립 클럽에서 래리를 만났을 때 제인이라는 본명을 댄 것이 의미 있다고 봤습니다. 댄과의 관계가 끝난 뒤, 그녀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려 했을 겁니다. 래리가 그 이름을 믿지 않은 것도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합니다.
래리가 나중에 앨리스와 잠자리를 했다고 댄에게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게 래리의 거짓말이라고 봅니다. 그는 앨리스에게 돈을 뿌리고 윽박질렀습니다. 앨리스가 그런 상황에서 잠자리를 했다고 말한 건, 댄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나를 잡기 위해 래리가 썼던 그 방식,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심리를 건드리는 방식을 앨리스도 마지막에 그대로 사용한 것 아닐까요.
소유욕이라는 이름의 사랑, 그 공허한 끝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댄의 반응이었습니다. 앨리스가 래리와 잠자리를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댄은 어떻게 했을까요. 극복하는 쪽을 선택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앨리스를 공격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댄 역시 앨리스를 만나는 동안 다른 여자인 안나를 유혹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흔들린 건 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리스의 행동에 분노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Possessiveness)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소유욕이란 상대방을 독점하려는 심리적 욕구를 말하는데, 이는 연인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지만 건강한 애정 관계와는 구별됩니다(출처: 심리학 저널 Psychology Today).
그때 앨리스가 외칩니다. "사랑이 어딨냐고.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고." 이 대사가 저한테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솔직한 문장이었습니다. 다른 세 사람이 감정을 숨기고 타협하고 복수하는 동안, 앨리스만이 그 공허함을 직접 말로 꺼냅니다. 어른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실제로 앨리스였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앨리스, 아니 제인이 뉴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아무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걷는 그녀의 뒷모습으로 끝납니다. 그 장면이 쓸쓸하지만, 이상하게 제일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클로저는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이 출연한 2004년 작품입니다. 볼 때마다 다른 인물이 더 잘 보이는 영화인데, 이번에 다시 보신다면 댄의 표정을 집중해서 보시길 권합니다. 그가 진심을 말할 때와 소유욕을 드러낼 때의 차이가 미묘하게 있습니다. 그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 영화가 또 다르게 읽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