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예쁜 퀴어 영화"쯤으로 생각했습니다. 1983년 이탈리아 별장, 두 남자의 여름 사랑. 근데 실제로 보고 나서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감정선이 너무 납득이 가서, 퀴어라는 프레임을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냥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게 됐을 때 그 감각, 그게 전부였습니다.
1983년 북부 이탈리아, 왜 이 배경이어야 했나
루카 과다니노 감독이 이 영화의 배경으로 1983년 북부 이탈리아를 선택한 건 단순한 미장센 취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 배경이 영화 전체의 맥락을 조용히 떠받치고 있다고 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경, 조명, 소품, 인물의 동선을 연출 의도에 따라 배치하는 개념입니다. 이 영화에서 북부 이탈리아의 풍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감정 상태를 대신 말해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고고학자인 아버지가 여름마다 대학원생을 별장으로 초청하는 설정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가 수중 유적에서 건져 올리는 고대 조각상은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의 것으로 묘사됩니다. 헬레니즘이란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그리스 문화가 동방 세계와 융합하며 형성된 문화 양식으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조각이 특징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놀란 건, 그 조각상이 엘리오와 올리버 두 사람을 동시에 닮아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남성 간의 감정적·정신적 유대는 사랑의 가장 고귀한 형태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인격체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이른바 '동등한 영혼끼리의 사랑'은 남성 간의 것으로 간주되던 문화적 맥락이 있었습니다. 이 배경 지식을 갖고 영화를 다시 보면, 이 이야기가 단순히 퀴어 로맨스로 읽히지 않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오와 올리버, 누가 먼저였나
많은 분들이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일방적으로 끌렸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올리버는 이미 초반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배구를 하다가 엘리오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근육을 풀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게 무심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직후 엘리오의 몸이 굳는 반응과 함께 편집되는 방식을 보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심어둔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올리버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먼저 다가간 쪽입니다.
올리버가 거절을 반복한 이유도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올리버는 자신이 무언가에 한번 빠지면 중독적으로 몰입하는 성격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거라고요. 그래서 여러 번 선을 긋고 밀어냈습니다. 결국 그 선을 먼저 허문 건 엘리오였습니다. 엘리오가 더 능동적으로, 더 용감하게 그 감정을 선택했습니다.
엘리오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의 정체성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입니다. 프랑스계, 이탈리아계, 유대계, 미국계 혈통이 섞인 복합적 배경을 가진 인물인데, 영화는 이 혼종성(hybridity)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혼종성이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나 정체성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문화 연구 개념입니다. 겉에서 보이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그의 전부가 아니듯, 순수하게 보이는 감정 표현 역시 그의 내면과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세심하게 드러냅니다.
엘리오가 올리버의 셔츠를 입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그게 이렇게 강렬하게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자기 옷은 조금 넉넉하다는 이유로 입지 않겠다고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던 아이가, 올리버 셔츠는 펄럭일 만큼 커도 기분 좋게 입고 뛰어다닙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영화에서, 이 장면 하나가 모든 말을 대신합니다.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퍼포먼스를 분석한 영화 연구에 따르면, 그는 이 역할에서 내면을 직접 표현하는 대신 신체적 반응과 시선 처리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출처: BFI 영국영화연구소). 실제로 영화에서 엘리오가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장면들입니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감정선에서 주목할 지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올리버의 어깨 터치 → 엘리오의 신체 경직: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
- 엘리오의 도도한 냉담 → 실은 거절이 두려운 자기 방어
- 올리버의 반복된 거절 → 자신의 중독적 성향에 대한 자각
- 엘리오의 능동적 고백 → 감정을 직접 선택하는 성장의 순간
부모님의 태도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
영화를 보면서 제가 예상 밖이었던 건 엘리오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이게 영화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아들이 올리버에 대해 무례하게 굴 때 따끔히 나무랍니다.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동시에, 6주간 함께할 여름 손님과 사이좋게 지내길 권유합니다. 어머니는 엘리오가 목에 유대인 표식 목걸이를 걸기 시작했을 때 그 변화를 빠르게 눈치채지만, 캐묻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소파에서 읽어주는 소설, 공주를 사랑한 기사의 이야기. 그게 우연히 선택된 텍스트는 아닐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부모의 양육 방식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자율성 지지(emotional autonomy support)와 맞닿아 있습니다. 정서적 자율성 지지란 자녀가 스스로의 감정을 탐색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판단을 보류하고 공간을 제공하는 양육 태도를 말합니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발달 연구에서는 이런 양육 환경이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엘리오의 부모님은 아이가 모든 감정과 직접 부딪히고, 그걸 온전히 안고 어른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한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퀴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것이 성장이라는 이야기.
결말 장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저도 보는 내내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올리버를 연기한 아미 해머가 엔딩 씬을 직접 베스트 장면으로 꼽았을 정도니까요.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 영화는 플롯을 미리 알고 보는 것보다 모르고 보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소설 원작이 더 섬세하고 내면 묘사가 깊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만의 방식으로 설득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두 사람을 캐스팅한 것,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방식.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 어딘가가 이상하게 서늘했습니다. 좋은 영화가 남기는 바로 그 감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