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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리뷰 (롱테이크, 연기, 자아)

by 주.만.지 2026. 6. 8.

 

극장을 나오면서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뭔가 퉁 하고 때리는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집으로 걷는 내내 영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감상이 가라앉기 전에 서둘러 글을 씁니다.

원테이크처럼 보이는 이유, 그리고 그게 버드맨일 수밖에 없는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버드맨을 보기 전에 "원테이크 스타일로 찍은 영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감독의 기교를 뽐내는 실험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는 롱테이크(Long Take)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롱테이크란 컷을 자주 끊지 않고 카메라가 한 번에 길게 이어서 촬영하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버드맨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번의 롱테이크 쇼트들을 이어 붙여 마치 영화 전체가 단 한 번도 끊기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편집했습니다. 낮이 밤으로 바뀌는 장면, 시간의 흐름이 뒤바뀌는 접점, 이런 부분에서만 아주 교묘하게 쇼트가 나뉩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따라가며 느낀 건, 이 편집이 단순한 시각적 묘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카메라가 끊기지 않고 인물 곁에 머무는 동안, 보는 사람은 이상하게 불안해집니다. 리건의 긴장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랄까요.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배우, 조명, 세트, 카메라 움직임 등 모든 시각적 요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버드맨의 미장센은 특별히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어둡고 좁은 브로드웨이 극장 복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답답함이 리건의 내면과 맞물려 기가 막히게 어울립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흥분을 느꼈던 작품이 두 편 있었는데,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블랙 스완이었습니다. 세 영화 모두 다음 장면에서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저를 몰아붙일지 기대하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버드맨도 보는 내내 그 감각이 살아 있었습니다.

버드맨의 촬영 기법이 가진 핵심적인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체 영화를 단일 롱테이크처럼 보이도록 편집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낮/밤 전환 등 불가피한 시간 접점에서만 쇼트를 나눴습니다.
  • 시각적 화려함보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의 심리를 일치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 연극 무대와 현실, 환상의 경계를 별도의 시각 효과 없이 카메라 흐름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붙였습니다.

이 영화가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수상한 것은(출처: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 단순히 주제 의식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촬영과 편집 방식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형식으로 구현한 결과였습니다.

연기가 만들어낸 순간들, 그 장면들은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입에서 감탄사가 나올 뻔한 장면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에드워드 노튼이 첫 리허설에서 소품으로 준비된 술을 진짜 술로 바꿔치기한 것을 이유로 꼬장을 부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인물이 거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나오미 왓츠와의 침대 장면에서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를 보고는 진심으로 경악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배우가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날것의 감각을 전달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마이클 키튼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노튼과 격하게 싸우다가 우는 척을 하고, 잠시 후 사과를 받을 즈음에 슬그머니 웃으며 되받아치는 장면은 스크린을 통해 보는 제가 닭살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는, 머릿속의 자아인 버드맨과 싸우면서 방 안의 물건들을 다 뒤집어엎는 도중에 매니저가 들어오자 호흡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태연한 척 말을 건네는 장면이었습니다. 웃기기도 했고 동시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배우의 퍼포먼스를 이야기할 때 흔히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표현을 씁니다. 캐릭터 아크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이 내면적으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궤적을 의미합니다. 리건 톰슨은 이 캐릭터 아크가 명확하게 그려지는 인물이지만, 단선적으로 성장하거나 무너지는 인물이 아닙니다. 불안하면서도 강하고, 굴복하는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마이클 키튼은 이 두 가지를 한 몸에 담아 연기했고, 그래서 보는 내내 긴장감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팬티 바람으로 타임스 스퀘어를 가로질러 다시 무대로 돌아가는 장면은, 제 개인적인 감상으론 영화사에 남을 풍자라고 생각합니다. 초현실적인 상황인데도 완전히 실제처럼 그려지고, 그 장면을 찍은 군중들의 반응이 곧바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흐름이 요즘 시대의 미디어 소비 방식을 아주 극사실적으로 꼬집습니다. 일부러 과장했지만 전혀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음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오케스트라 스코어(Orchestral Score)라기보다 퍼커션(Percussion) 중심의 즉흥 연주에 가까웠습니다. 퍼커션이란 드럼, 심벌, 봉고 등 두드리는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군을 통칭합니다.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타악기 소리가 이야기의 속도와 감정선을 청각으로 따라가며 채워주는 느낌이었는데, 영화 전반의 날것스러운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안토니오 산체스는 즉흥 연주 방식으로 녹음을 진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IMDb).

버드맨을 보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영화나 배우를 볼 때, 얼마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느끼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명 평론가가 좋다고 하면 좋아 보이고, 흥행 순위가 높으면 기대가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화 속 리건이 그토록 분노했던 것도 결국 같은 구조였습니다. 누군가가 규정한 틀 안에서만 평가받는 것에 대한 분노.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외부의 기준에 기대어 무언가를 판단하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버드맨은 누가 봐도 잘 만든 영화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쉽게 와 닿는 작품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저도 보는 내내 즐거우면서 가슴이 묵직하게 막히는 기분이 번갈아 들었고, 극장을 나서며 뭔가 정리된 감상이 생겼다기보다는 그냥 오래 걷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예고편보다 최대한 적은 정보를 가진 채로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oXAa5wXz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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