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보는 내내 불만이었습니다.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 절제인지 무책임인지 헷갈리는 생략들. 그런데 극장을 나와서도, 며칠이 지나서도 이 영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애프터썬은 그렇게 뒤늦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관람 중에는 몰랐던 것들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제가 든 첫 생각은 "이게 왜 아카데미 후보야?"였습니다. 이혼한 아버지와 11살 딸이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이렇다 할 사건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리조트 일상, 길게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들.
중반이 지나기도 전에 인과관계 추론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왜 저런 돌발 행동을 하는지,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된 건지, 우울증을 겪는 것 같은 아버지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 작품이 과대평가된 독립 예술영화 특유의 겉멋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폴 메스칼 인터뷰를 찾아보고, 작품 해설을 찾아보고 나서야 이 영화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20년 뒤 성인이 된 소피가 기억과 상상으로 재구성한 장면들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비선형 서사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기억, 상상, 현재가 뒤섞여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으로, 관객이 능동적으로 의미를 조립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애프터썬은 이 방식을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우리가 보는 튀르키예의 풍경은 실제 벌어진 일이 아니라, 간절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굴절된 소피의 기억입니다.
아버지가 감추려 했던 프레임 밖의 자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자신이 설정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 상대는 기쁨으로 다가오지만, 프레임 밖의 상대는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임 밖의 존재가 더 진짜이고 거대할 때가 많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 캘럼은 딸 소피가 원하는 프레임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안간힘을 씁니다. 재밌는 아빠, 함께 놀아주는 아빠. 그러면서 프레임 밖의 진짜 자신, 즉 심각한 우울 상태와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죽어라 숨깁니다.
이 부분에서 등장하는 캘럼의 행동들이 나중에 돌아보면 전부 다르게 읽힙니다. 그가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태극권 동작, 명상과 글쓰기에 관한 책들, 이것들은 사실 마음속의 고통을 물리치려는 필사적인 시도였습니다. 캘럼은 딸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고, 흡연을 엄하게 금지하고, 자기 없는 세상에서도 딸이 혼자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이미 어떤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욕실 장면입니다. 한쪽에서는 소피가 어른들 잡지를 몰래 보고 있고, 열린 문 너머 욕실에서는 아버지가 깁스를 풀다가 팔에 피를 흘리는 장면. 두 공간은 각각 노란 조명과 파란 조명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이 의미를 갖습니다. 컬러 그레이딩이란 영상에 색조를 입혀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편집 기술로, 이 장면에서 파란 조명은 영어로 '우울하다'는 뜻도 되는 'blue'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그 순간 소피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11살이어서, 자기 자신이 더 재밌어서. 그것이 소피의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20년 뒤 성인이 된 소피에게 그 무지의 자각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됩니다.
노란색이 상실의 색이 된 이유
이 영화를 두 번째 떠올릴 때 유독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유독 많이 등장하는 노란색입니다. 리조트 직원들의 마카레나 의상, 수중 카메라, 소피가 입은 잠수복,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자유이용권 팔찌. 이것들이 실제로 전부 노란색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20년이 지난 기억 속에서 그 물건들이 노란색으로 물든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여행 중에 소피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 "아빠, 나중에 아빠 방에 가면 내 방을 노란색으로 칠할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징적 색채 심리(symbolic color psychology)가 적용됩니다. 상징적 색채 심리란 특정 색이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과 결합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현상입니다. 소피에게 노란색은 이루어지지 못한 꿈과 아버지에 대한 간절함이 응축된 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웠던 기억의 소품들이 전부 노란색으로 재색칠되어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영화가 단순히 감정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프레임, 색채, 편집 등 영화적 미장센(mise-en-scène) 전반을 통해 기억의 굴절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담긴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소품, 배우의 위치, 카메라 앵글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샬롯 웰스는 이것을 굉장히 치밀하게 통제한 감독입니다.
폴 메스칼의 연기와 관람 후 여진
폴 메스칼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보는 내내 뭘 보여준 건지 잘 모르겠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의 연기는 보는 중에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나서 재생되는 것이었습니다.
우울 삽화(depressive episode), 즉 우울증의 급성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 동안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폴 메스칼은 과장 없이 담아냈습니다. 즐거운 척하면서 눈빛이 비어 있고, 웃다가 갑자기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 억지로 쾌활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소진되는 일인지, 그 피로감이 뒤늦게 전해졌습니다.
우울증의 겉모습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오해가 많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울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외부에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증상을 겪는다고 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폴 메스칼이 구현한 캘럼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영화 연기의 사실성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로 심리적 리얼리즘(psychological realism)이 있습니다. 심리적 리얼리즘이란 인물의 내면 상태가 행동, 눈빛, 신체 언어를 통해 설득력 있게 표현되는 연기 방법론입니다. 영화계에서도 폴 메스칼의 연기를 두고 극단적인 절제 속에서 내면을 드러낸 사례로 평가하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출처: British Film Institute).
캘럼의 연기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 앞에서는 미소를 짓다가 뒤돌아서 울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상상 속 장면이었습니다. 어른 소피가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고,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 자체가 너무 아팠습니다.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프레임 안에 자신을 가두고, 프레임 밖의 진짜 자신을 죽여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소피는 그 프레임 밖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기대 밖의 모습이었음에도. 누군가를 위해 다가올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뎌내는 것이, 바로 그 아버지가 자신을 대해준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보고 난 뒤의 여진이 이 정도면, 관람 중의 불만쯤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애프터썬은 서늘하게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지금 당장 좋은 영화가 아니라, 오래 남는 영화를 찾는다면 한 번쯤 버텨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