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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다시 보기 (역순구조, 카타르시스, 선택의 무게)

by 주.만.지 2026. 6. 5.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20대에 처음 봤을 때 그냥 잘 만든 영화라고 넘겼는데, 십수 년이 지나 다시 보고서야 왜 이게 걸작 소리를 듣는지 이해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야만 보이는 영화가 있다는 걸, 박하사탕이 증명합니다.

역순서사 구조가 주는 충격

박하사탕(1999)은 역순서사(reverse chronology) 방식으로 이야기를 풉니다. 역순서사란 이야기를 결말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술 방식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나 가스파르 노에의 되돌이킬 수 없는도 같은 방식을 씁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이 구조를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주제 그 자체로 사용합니다.

영화는 1999년의 영호가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그 기차가 거꾸로 달리며 1979년까지 되감습니다. 이 구조가 관객에게 주는 효과는 상당히 계산적입니다. 어떤 인물이 왜 망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망가지기 전이었는지를 차례차례 복원해 보여주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말을 알고 나서 그 시작을 보게 되니, 순수했던 장면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는 20대에 이걸 보면서 구조의 낯섦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30대에 다시 보니 그 낯섦 뒤에 깔린 잔인함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파트, 1979년 소풍 장면에서 영호와 순임이 처음 눈이 마주치는 순간 — 그 장면을 볼 때 앞에서 이미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으니, 그 웃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카타르시스 없는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카타르시스(catharsis)는 비극을 통해 관객이 감정적 정화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어딘가 해소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그 정화를 제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영호가 망가진 건 단지 나쁜 선택 때문만이 아닙니다. 1980년 광주에 끌려가 총을 쏘고, 총을 맞고, 그 이후 형사가 되어 고문을 일삼게 되는 과정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폭력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한 개인의 파멸을 당대 한국 현대사의 단면과 정확하게 겹쳐놓습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이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상업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래도 희망이 있어"라는 감정이 남지 않습니다. 대신 불편하고 무거운 것이 가슴에 눌립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 그냥 "뭐... 잘 만들었네" 수준으로 넘긴 건 아마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20대의 저에게는 영호의 선택들이 아직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다시 봤을 때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던 장면은 순임의 손 이야기였습니다. "뭉툭하고 못생겼는데 참 착하게 보이는 손"이라던 그녀의 말. 그 착한 손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대사를 들으면, 그게 그냥 대사로 안 들립니다.

설경구라는 배우의 밀도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정말 감탄했던 건 설경구의 연기였습니다. 당시 그는 신인에 가까웠는데 20년 세월을 아우르는 캐릭터를 이렇게 촘촘하게 연기했다는 게 지금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영호는 다섯 개 이상의 시간대를 오가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여야 합니다. 1979년의 순수한 청년, 1984년의 갓 입직한 형사, 1987년 고문에 이미 익숙해진 영호, 1994년의 냉소적인 사업가, 그리고 1999년 모든 것을 잃은 영호. 이걸 분장이나 편집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눈빛 하나, 걷는 방식 하나로 구분해 낸다는 게 배우로서 대단한 역량입니다.

연기 분석 관점에서 보면 설경구는 이 작품에서 내면 동기(internal motivation) 기반의 연기를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내면 동기 기반 연기란 캐릭터의 심리적 역사를 배우 스스로가 내면화하여, 외부 지시 없이도 반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하는 메소드(method) 접근법을 말합니다. 특히 고문실에서 물로 손을 씻는 장면과 순임 앞에서 손을 펼쳐 보이는 장면은 같은 소품(손)을 전혀 다른 감정 상태로 처리해냅니다. 연기의 교과서라 불러도 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소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나중에 드라마 라이프(2018)에서 냉철한 병원장으로 나오는 문소리를 보고서야 "아, 박하사탕의 그 배우구나"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 거리감이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선택의 무게, 그리고 나이 들어서야 보이는 것들

10년 만에 다시 본 이 영화에서 제가 건진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환경 탓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영호가 망가지는 과정에는 분명 구조적인 폭력(5·18, 고문 문화, IMF 이후 경제 붕괴 등)이 있습니다. 그 폭력이 실재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고, 영화도 그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영호가 내린 수많은 선택들 — 순임을 외면한 것, 고문을 일삼은 것, 아내를 방치한 것 — 은 분명히 그의 결정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선택과 사회구조적 압력 사이의 관계는 학계에서도 꾸준히 논의되는 주제입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를 구조-행위자 논쟁(structure-agency debate)이라 부릅니다. 구조-행위자 논쟁이란 인간의 행동이 사회적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논의를 의미합니다. 한국사회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한국사회학에는 이와 관련한 연구가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사회학회).

박하사탕은 이 논쟁에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관객 앞에 그냥 놓아버립니다. 저는 그게 이 영화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20대에 이 영화를 보고 "뭐, 잘 만들었네" 했던 제가, 30대에 다시 보고 거의 호러무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솔직히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 당시 같이 보자던 친구들은 뭘 알고 그렇게 좋다고 했을까요. 아마 그 친구들도 지금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영화로 느낄 겁니다. 좋은 영화란 아마 그런 것이겠죠. 보는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영화도 같이 나이를 먹어 보이는 것.

아직 안 보셨다면 그냥 한 번 보시고, 10년 전에 봤다면 지금 다시 한 번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블루레이 사놓고 안 보시는 분이 있다면, 저 말고 또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ADl8cAD-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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